[수요 인터뷰] 청계천 복원사업 진두지휘 양윤재 추진본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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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는 7월이면 서울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첫삽을 뜬다.지난 1958년 서울 근대화 상징의 하나로 복개된 뒤 40여년만에 아스팔트 아래서 잠자고 있던 청계천이 햇빛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어릴적 빨래하던 어머니 옆에서 멱을 감던 기억을 떠올리며 복원을 학수고대하는 시민들도 공사 과정이나 복원 이후 극심해질 교통난을 걱정하고 있다. 청계천 주변의 30여만명에 이르는 상인들은 자칮 생활의 터전을 잃지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14일 오후 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양윤재(梁鈗在·54)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을 만나 과연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시중의 우려를 전달하고 앞으로의 추진 일정 등을 들어보았다.

"예전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교통대란을 걱정했지만 별 문제 없이 넘겼어요. 청계고가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생각을 넓혀볼까요. 이제 늘어나는 자가용에 도로 수요를 맞추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가 확립돼야 합니다.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자가용 중심의 교통패턴이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원에 따른 교통영향 고려 없이 서울시가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梁본부장은 단기적으로 교통흐름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낙관했다.

또 하나의 난제인 상인들의 생존권 보장이나 금전적 보상 요구에 대해서는 꾸준한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상인들의 주장과 의견을 반영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상인들도 변해야 합니다. 30~40년 전의 영업 방식을 답습하다가는 도태될지도 모릅니다. 청계천 복원은 상인들에게 새로운 사업으로 변신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단기적인 금전 보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인들이 성공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그는 지금은 복원에 반대하는 상인들도 5년 뒤에는 "청계천을 복원하길 잘했다"고 박수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梁본부장에게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서울 시민들이 '살만한 곳'에 살고 있다는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고 싶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을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만드는 첫 단추입니다. 이 사업은 서울을 떠나는 도시에서 돌아오는 도시로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梁본부장이 청계천을 연구한 것은 올해로 정확히 10년째. 93년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5대거점 지역개발사업'을 연구하던 중 감춰져 있는 '서울의 보물' 청계천을 발견했다. 그리고 청계천을 다시 살린다면 서울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선진국들의 도시개발은 도심 재활성화(revitalization)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요. 공동화(空洞化).황폐화되고 있는 도시를 살려내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도심의 자연환경을 먼저 개선해야 합니다."

21년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梁본부장이 교편을 놓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지난해 7월 서울시로부터 청계천복원 추진본부장으로 영입 제의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들은 장관이나 차관의 직위를 받고 정부에 들어가는 관행 때문인지 제가 지방자치단체로 파견된다고 하니 반대가 조금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상아탑을 벗어나 제가 연구한 것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수락했지요."

하지만 그의 짧은 공무원 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내부규정을 몰라 시 공무원을 운전기사로 고용한 것이 알려지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고 외부인사라며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대학과 달리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딱딱한 관료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서울시 내부의 의견 통일이 시급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취지에서 저부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어요. 복원에 반대했던 직원들도 지금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설 정도가 됐습니다."

또 청계천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청계고가도로와 복개구조물 내부를 영상으로 제작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청계천 마라톤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주변지역 개발에 대해서 梁본부장은 하천과 녹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저층빌딩 위주의 저밀도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 환경.생태 복원에 의미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 일각에서 용적률과 건폐율을 크게 올려 민간 주도로 대형 재개발을 유도하자는 의견도 나와 조율 여부가 관심이다.

"청계천의 국제 금융.비즈니스 거점화를 위해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는 고층빌딩이 별로 없어요. 높은 빌딩을 세운다고 국제 금융.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건설부지가 협소한 서울의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청계천의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지역의 고밀도 개발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청계천 주변의 재개발도 필요하다면 시에서 직접 토지 수용에 나설 수 있습니다."

梁본부장은 청계천 복원 이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서울의 새로운 얼굴을 기대하라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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