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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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상순(1961~)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부분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이 시는 대상의 재현도 아니고 자기표현도 아니다. 언어는 대상과 무관하다. 언어는 자신의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진리를 찾는 도구도 아니다.

언어로'써' 억지스럽게 의미를 만들기보다 언어로'서' 자연스러운 허구를 창조하는 시, 필연성보다 우연성을, 습관적인 의사소통보다 낯선 대화를, 하나의 해석보다 다양한 오독을 받아들이는 시, 그런 시를 쓰려면 대담해야 하고 몰이해의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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