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회생 놓고 전현직장관 격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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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담하게 재정을 풀어 경기를 자극해야 한다."

"천만의 말씀. 지금은 재정을 동원할 여지가 없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담당상 겸 금융상이 일본을 대표하는 논객이자 전 기획청장관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와 일본경제의 회생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주간 아사히(朝日)의 기획으로 지난 7일 사카이야가 다케나카의 집무실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번 대담에서 두 사람은 정반대의 처방을 내놓고 팽팽히 맞섰다.

우선 올해 경제전망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사카이야가 국제경제의 불안으로 하반기 들어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을 늘어놓자 다케나카는 현직 각료답게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높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부실채권을 계획대로 정리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초전을 마친 두 사람은 바로 본론에 들어가 사카이야가 먼저 과감한 재정 동원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경제에 강력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일본경제는 곧 노화해버린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은 충격요법을 기대하고 있는데도 정부 관료들은 임기에 연연해 미지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카이야는 이어 국가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할 능력과 환경을 갖췄을 때는 정부가 한껏 가속페달을 밟아 한동안 속도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정부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너무 자주 바꿔 밟는 초보운전자"라며 "이 때문에 일본경제의 성장엔진은 제대로 출력을 내지 못한 채 빠르게 마모됐다"고 말했다. 그 실패사례가 1997년 재정개혁을 한답시고 긴축정책을 펴다 경기를 악화시킨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내각이라는 것이다.

전임자의 질책에 대해 다케나카는 "말씀대로라면 재정적자는 무한대로 늘어난다"고 응수했다. 지금과 같은 재정적자에서 국채발행을 더 늘리면 금리가 올라 금융시장에 충격이 온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설명했다. 그는 "재정을 풀어 경기를 자극하면 1~2년은 효과를 보겠지만 10년 이상 지속되지는 않는다"며 역시 구조개혁을 내세웠다.

다케나카는 또 "개혁이란 조금씩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확 해버리는 것"이라며 개혁 리더로서의 경험담도 들려줬다. 자신의 개혁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여론은 정부가 개혁을 늦춘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개혁을 하고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서운한 마음도 비쳤다.

내내 평행선을 달린 두 사람은 결국 경제활성화를 위한 특구 설치에 의견일치를 보는 것으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다케나카는 "고문 자격으로 새로운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지도해달라"며 사카이야에게 예의를 갖춰 부탁했다.

대담 직전 사카이야는 "내가 재임시 장관실의 응접실과 화장실을 없애 미안하다"고 인사말을 건넸고, 다케나카는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받아넘겼다.

다케나카는 2001년 4월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사카이야의 후임격인 경제재정담당상에 기용돼 지난해 가을부터는 금융상까지 겸하고 있다. 1998년 7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냈던 사카이야는 퇴임 후 작가로서 활동 중이며 내각 특별고문을 맡고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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