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키드먼 주연의 '물랑루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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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제54회 칸 영화제 개막을 장식한 「물랑루즈(Moulin Rouge)」가 26일 극장가에 간판을 내건다.

`빨간 풍차'란 뜻의 `물랭 루주'는 파리 몽마르트에서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전통의 클럽. 1900년 이곳을 무대로 창부와 가난한 작가의 비극적인 사랑을 스크린에 옮겼다.

물랭 루주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 커튼이 올라가면 오케스트라의 팡파르에 맞춰 낯익은 20세기 폭스의 심벌이 비쳐지며 영화가 시작된다. 변두리의 여관방에서 작품에 몰두하던 가난한 극작가 겸 시인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은 위층에서 연습하던 연극 배우가 천장을 뚫고 떨어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이들의 연습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단원들이 대사 문제로 입씨름을 벌이자 크리스티앙은 즉석에서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 단번에 작가로 발탁된다.

크리스티앙은 공연 무대인 물랭 루주를 찾았다가 이곳 최고의 스타인 샤틴(니콜키드먼)을 보자마자 사랑의 포로가 된다. 돈에 웃음을 팔아온 샤틴도 크리스티앙의 순수한 마음에 끌려 위험한 사랑의 줄타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샤틴에 반해 공연의 후원자로 나선 공작은 둘 사이를 눈치채고 갈라서지 않으면 물랭 루주 경영권을 빼앗고 공연도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한다.

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삼각관계는 고리타분하고 판에 박은 구성이지만 100년 전 물랭 루주 고객들을 열광시켰던 무희들의 화려한 춤과 노래로 관객들은 진부함과 식상함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더욱이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이나 `러브 이즈 라이크 옥시즌(Love Is Like Oxygen)' 등 귀에 익은 현대의 노랫말이 튀어나오고 마돈나의 히트곡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을 뮤지컬로 꾸민 장면이 등장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내세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원작 무대를 펑크 음악이 흐르는 현대의 도시로 바꿔치기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재치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니콜 키드먼은 `빛나는 다이아몬드'라는 영화 속 별명답게 요염한 매력을 발산해 톰 크루즈와의 결별이 그의 인기가도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음을 과시했다. 그에반해 이완 맥그리거는 키드먼의 광채에 눌려 빛을 잃었다.

크리스티앙과 샤틴의 비극적인 운명을 강조하느라 중반부터 지나치게 비장한 분위기로 일관한 것도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물랭 루주 지배인 지들러(짐 브로드번트)가 '쇼는 계속돼야 한다(Show Must Go On)'고 외치는 말을 정작 루어만 감독은흘려들었던 탓일까.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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