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양궁 남자일반부 우승한 정재헌

중앙일보

입력

"선수 아닌 선수로 사선에 서는 서러움을 말로 표현 못합니다. "

14일 양궁 남자일반부 우승을 차지한 정재헌 (대구.대구중구청) 은 마지막 라운드 스코어를 확인하고 나오면서 고개를 떨궜다.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사선에서 활시위를 당길때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대회는 정선수가 지난 8월 군입소 훈련을 거부한 대가로 앞으로 5년간 국가대표선발전 참가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였다. 이날 경기는 정선수를 비롯, 훈련거부파동을 일으킨 선수들과 대신 국가대표자격을 얻어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나간 선수들 간의 경쟁이 예상됐으나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16강과 8강에서 탈락했다.

선수 자격박탈 파동 장본인들과 세계선수권대회 대리 출전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4강에 오른 정선수는 준결승에서 배재경 (인천.INI스틸) 을, 결승에서 이동욱 (울산.울산남구청) 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좋은 결과를 냈지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난 사건 이후 처음 출전하는 대회에서 이렇게 우승해 더욱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18세의 나이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던 정재헌. 이번 대회 남자양궁30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 전국체전 출전한 후 처음으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더 없이 값진 메달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도 많습니다. "

훈련거부파동 이후 선수생활을 그만 둘까도 생각했다. 국가대표 자격을 얻지 못하는 선수가 무슨 자격이 있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자신의 지난날 행동이 모두 과오로만 뭍힐 것이라 생각하니 활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날 경기 내내 정선수는 웃음과 과장된 제스처로 응원하는 후배들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천안 =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