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압력에 … 일본은행 독립시대 15년 만에 종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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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내각의 출범으로 일본은행(BOJ)이 중대 기로에 섰다. 일본은행 독립성의 기초가 돼 온‘1997년 체제’가 막을 내리는 듯하다.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 원칙 때문이다. 취임 하루 전인 25일 아베 총리는 연정 파트너인 야마구치 마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와 만나 ▶연간 물가상승 목표 2% ▶ 연간 경제성장 3% ▶에너지·환경·의료 부문 규제완화 등 ‘경제정책 3원칙’에 합의했다.

 그중 일본은행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대목이 바로 물가상승 목표제다. 일본은행이 스스로 설정할 통화정책 목표를 아베 내각이 결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중앙은행 독립은 정책 목표와 수단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행은 97년 법 개정 이후 15년 동안 독자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수단을 선택해 왔다. 이토 다카토시(경제학) 도쿄대 교수가 이름 붙인 ‘1997년 체제’다.

 애초 야마구치 공명당 대표는 ‘물가 목표 2%’안에 반대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종결을 명분으로 강하게 밀어붙이자 두 손을 들었다.

 일본은행은 속이 탈 게 뻔하다. 현 총재인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는 매파로 분류된다. 물가안정과 독립성을 내세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아베 총리가 일본은행 총재 지명권을 갖고 있다. 일본은행 쪽의 저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은행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일본은행은 ‘거품 재발을 막고 부실과 비효율을 털어내야 한다’는 이유로 디플레이션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그 바람에 10년에 가까운 양적완화에도 디플레와 불황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행은 전문가들로부터 “가짜 양적완화를 실시했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은행뿐아니라 미국·영국·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재정위기와 경기침체 때문에 외부(정치권) 압력에 아주 취약한 처지”라고 진단했다.

  존 우드(경제학)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는 “영국 중앙은행이 1694년 설립된 이후 318년 동안 독자적으로 움직인 시기는 최근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나머지 기간엔 왕이나 선출된 권력(내각)이 설정해준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헌신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이 예외적인 시대를 마감하고 정부의 통제를 받는 시대로 회귀하는 셈이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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