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억 횡령하고, 교수를 인부로 부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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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국에 학교법인 7개를 설립하고 6개 대학을 운영하면서 1000억여원의 교비를 횡령한 학원 재벌이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그는 대학 이외에 건설회사를 설립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대학의 공사를 독점 수주하고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빼돌렸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호남과 수도권 지역에서 7개 학원 재단(산하에 4년제 대학 2개와 2년제 대학 4개)과 병원 3곳 등을 운영 중인 이홍하(74) 서남대 설립자를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이씨가 설립한 서남대 김응식(57) 총장과 신경대 송문석(58) 총장, 이씨의 친척 한모(51)씨 등 4명도 횡령에 가담한 혐의로 함께 구속기소했다. 또 이씨가 운영하는 D고교 김모 행정실장 등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씨가 운영하는 학교 가운데 4개 대학과 건설회사에서 최근 5년간 횡령한 교비가 모두 1004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씨는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재직하면서 목욕탕을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1977년 광주에 모 여상을 설립했다. 이후 20여 년간 7개의 학교법인을 세우고 그 산하에 6개 대학과 3개 고교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또 광주 남광병원 등 병원 3곳을 인수해 운영해 왔다. 그는 98년에도 교비 409억원을 횡령해 대학 설립과 이전비용, 병원 인수비용, 자녀 유학비용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전남 광양의 한려대와 광양보건대, 전북 남원 소재 서남대와 경기도 화성 소재 신경대 등 4개 대학에 자신의 부인·친인척과 지인을 이사장과 총장으로 임명해 학교의 인사와 재무를 장악했다. 이와 별도로 성아건설을 설립해 경영하면서 교비를 빼내는 창구로 활용했다. 공사 대금을 부풀리거나 노임대장을 허위 작성하는 등의 수법이 주로 사용됐다. 이씨는 광주 남광병원 6층의 입원실 8개에 법인기획실을 몰래 설치하고 이들 대학과 성아건설의 재무회계를 통합관리해 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는 무급휴직제 도입과 인사 조치 등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교직원들을 장악했으며 일부 교수를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하는 인부로 부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빼돌린 자금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세탁’을 했다. 그는 학교 부동산을 구입할 때에는 먼저 교직원 명의로 대출을 받아 매매대금을 지급한 뒤 횡령한 교비로 원리금을 상환했다. 이런 식으로 교직원 명의로 대출을 받은 돈이 470억원에 이른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씨는 횡령한 돈 가운데 214억원은 병원 운영비 등에 쓰고 교직원 대출금 상환에 284억원, 대학 부지 구입에 71억원, 기획실 운영에 44억원, 학교 사건 관련 소송비로 15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그가 진술을 거부함에 따라 개인 용도로 쓴 120억원과 나머지 250여억원의 용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순천지청 관계자는 “수개월 전 수사에 착수한 사실을 감지한 이씨가 결재자료를 전부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고 교직원들에게는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도록 단속하거나 회유하는 바람에 수사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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