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소리 소문 없이 세워진 두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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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정치권이 와글댄다. 승리한 쪽은 들썩거림으로, 패배한 쪽은 소란스러움으로. 단 한 곳, 조용한 데가 있으니 청와대다. 절간이 따로 없다. 평소처럼 왔다 갔다 하고 말도, 일도 하는 듯한데 영 소리가 안 난다. 주목받는 일도 드물다.

 청와대에선 그러나 소리 소문도 없이 기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 분야다. 평소 정치를 멀리한 이명박 대통령이기에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임기 말 대통령이 여당 당원이다’. 별스럽지 않아 보이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참’이기에 25년 걸렸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 이전 집권 5년차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당적(黨籍)을 보유한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87년 이후 5년 단임제 체제에선 모든 대통령이 막판에 무당적 상태가 되곤 했다. 공정 선거 관리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대통령이 원해서 그리 선택한 건 아니었다. 여당을 탈당하는 순간 대통령도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 맞서기 위해, 혹은 떼밀려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 해 2월에, YS는 11월에 당을 떠났다. DJ는 “내 정치 인생이 담겨 있었던 민주당을 떠났다”는 짧은 문장을 통해 반어적으로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은 차기 후보가 아니어서 (야당에) 맞서 대응하기가 어렵고 여당 또한 대통령을 방어하는 것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게 유리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탈당의 필연성을 강변했지만 속으론 정치 인생의 실패로 여겼다. 이 대통령에 와서야 비로소 필연으로부터 비켜설 수 있었다.

 신기록은 또 있다. 김황식 총리다. ‘대타 총리’ 성격이었던 그가 어느덧 1980년 이후 최장수 총리란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 70년대에도 총리를 했던 JP를 빼고서다. 지금까진 노신영 전 총리의 2년3개월6일이 최장 기록이었다. 김 총리는 적어도 내년 2월20일께까진 일할 터이다. 그럴 경우 재임 기간은 2년4개월20일쯤 된다. 이 대통령의 5년 임기 중 절반을 같이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나 김 총리나 ‘책임 총리’란 표현을 내세우진 않는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김 총리의 비중은 적지 않다. 권력 핵심에선 “명실상부한 총리”라고들 말한다.

 두 가지 모두 정치권의 오랜 과제였다. 대통령 탈당 문제는 책임 정치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여당 대통령 후보마저 지난 과거를 부정하는 건 ‘정치의 단절’과 함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엄정한 평가도,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상황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집권 전반기엔 통치 과잉, 후반기엔 통치 실종을 오갔고 정당 정치는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의 사유물로 전락하곤 했다. 악습인데도 끊어내질 못했다. 차별화 유혹이 커서다. 책임총리제도 여든 야든 제왕적 대통령제의 해법으로 꼽는 거다.

 현 정권에서 어떻게 이런 전례가 생겼을까. 아무래도 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란 조합 덕분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분당 보선 때부터 정치적 의중을 쉽사리 밝히지도, 관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때 껄끄러웠던 박 당선인도 끝내 지지했다. 박 당선인은 이 대통령과 정책을 두곤 갈등했지만 대통령직은 존중했다. 둘이 달랐으되 함께할 여지가 있었던 거다. 여당의 4년여 선거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재임 중 치러진 두 차례 총선에서 여당은 과반 의석을 했다. 지방선거에서도 서울·경기를 지켜냈다. 40대 0의 치욕을 안고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중 과반 의석이 무너지는 걸 지켜본 노태우 전 대통령과 DJ 때와는 달랐다. 여당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으므로 대통령이 크게 흔들릴 일도 없었다. 서로 단절하는 이익보다 함께 있는 이익이 더 컸다.

 두 사람이 의도했다기보다 우발적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그래도 “정치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의 방향을 결정한 건 우발적 사건들이었다”(『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걸 되새겨본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제도화하길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