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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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승훈(1942~) '인생' 부분

난 목도리를 하고 나간다
오버를 걸치고 나간다
추억을 걸치고 나간다
1년이 간다
언제나 날씨는 춥고
따뜻하고 다시 춥고
이런 게 중요하다
인생에선 이런 게 중요하다
인생엔 아무 뜻도 없으므로
다만 날씨를 아는
정도에 따라
인생이 흘러간다

인생에 뜻이 있든 없든 날씨가 차가워지면 거리에 군고구마 장수가 나타나고, 찹쌀떡에 뜻이 있든 없든 겨울밤에 먹는 찹쌀떡은 맛있고 동치미 국물은 시원하다. 왜 사는지 모르지만 인생은 흘러가고 날씨는 변한다. 추운 날엔 추운 인생이 있고 따뜻한 날엔 따뜻한 인생이 있다. 뜻있는 인생이여, 깃발을 펄럭이며 고기잡이배들이 출항하고, 뜻 없는 인생이여, 백합을 안고 아낙네들이 저녁 갯벌에서 돌아오네.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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