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아베의 군자표변을 기대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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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자민당 압승으로 끝난 일본의 총선 결과는 3년3개월 전 총선의 복사판이다. 승자와 패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가차없다. 적당한 견제세력이고 뭐고 없다. 한쪽에 몰표를 준다. 그러다 보니 이긴 쪽은 자만한다.

 3년3개월 전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도 그랬다. 국가재정은 거덜났는데도 고속도로 무료화, 아동수당 월 2만6000엔(약 34만원) 지급 등 현실성 없는 공약에 매달렸다.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국민이 원한다”고 밀어붙이려 했다. 처음에는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던 유권자들이 “속았다”고 깨달은 건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에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선거는 자민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패배였던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혼돈한 결과다.

 요즘 일본 정치권과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는 26일 총리로 취임하는 아베의 정책에 쏠려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아베의 평화헌법 개정이나 국방군 창설,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의 날’의 국가행사로의 격상, 위안부의 강제성 부인 강화 등 소름 끼치는 내용들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우려되는 건 자민당 못지않게, 아니 자민당보다 훨씬 극우 경향의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 등의 세력이 약진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의 당선자 480명 중 89%(아사히신문 조사)가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상황이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직결되는 평화헌법 9조 개정에 찬성하는 세력도 72%(마이니치신문 조사)에 달한다. 개헌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아베로선 ‘절호의 기회’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아베가 잊어선 안 되는 게 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 단순히 북한과 중국처럼 강력한 무기와 군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주변국을 침략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일본을 높게 평가하는 건 전쟁을 부인하는 평화헌법에 입각해 총 한번 쏘지 않은 지난 66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위안부 문제에 잘못이 없다고 뻗대고, 되지도 않을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한다고 해서 ‘아, 역시 일본이 강하구나’라고 할 어리석은 국가는 없다. 오히려 일본이 정말 총체적 위기에 놓인 건 아무리 중국에 밀렸다고는 하지만 경제 3위의 경제대국에 걸맞은, ‘본받을 만한’ 리더십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일본을 아끼는 마음에서, 아베의 군자표변(君子豹變·표범의 털가죽이 아름답게 변해 가는 것처럼 군자는 자기 잘못을 고쳐 선(善)으로 향하는 데 신속하다는 뜻)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