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사 이면 담은 책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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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내 흥행 1위 영화는 '스파이더 맨'(4억6백만달러)이었다. 2위 '스타워즈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3억1천만달러)의 흥행수입과 무려 1억달러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최근 대작들에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 고만고만하다고 할 때, 성공요인을 원작의 높은 인지도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설득력을 갖는다.

1963년 첫선을 보인 '스파이더 맨'은 마블 코믹스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만화출판사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렇다면 마블 코믹스는 어떻게 이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배경은 5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절정을 이뤘던, 잔혹하기 그지없던 공포 및 범죄만화는 결국 검열을 불러왔고 54년부터 모든 만화는 '만화규약국'의 심의를 받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마블 코믹스의 편집자 겸 작가였던 스탠 리와 화가 잭 커비는 규제에 저촉될 염려가 없는 범위에서,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평범한 사람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려내는데 주력했다. '인크레더블 헐크'(1962년.한국 소개제목 '두 얼굴의 사나이')에 이은 '스파이더 맨'은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 강사인 예술평론가 로저 새빈이 96년 선보인 '만화의 역사'(원제 Comics,Comix & Graphic Novels-A History of Comic Art)가 글논그림밭에서 번역.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영국과 미국 만화사의 이면을 찬찬히 보여준다. 17세기 영국 목판 전단지에서 시작돼 19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개된 만화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6백여컷의 컬러 도판의 힘은 대단하다.

새빈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대안문화로서의 만화의 변모다. 특히 전통적인 아동만화가 60~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밀려난 사실에 주목한다.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 급진 성향을 띠었던 젊은이들은 만화를 통해 마약.반전운동.록뮤직.섹스 같은 자신들의 반(反)문화를 이야기했다. 'Comics'대신 'ComiX'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X등급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회주의적.무정부주의적.자유주의적 감각으로 가득찬 만화책 '잽(Zap)'을 선보인 로버트 크럼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왜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부로 불리는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주로 영미 만화에 대한 분석인 만큼 유럽과 아시아 만화 부분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은 아쉽다. 번역 김한영. 2백40쪽. 4만5천원.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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