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총기 규제의 기회, 오바마 이번엔 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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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경민
뉴욕특파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달랑 2주일, 아니 열흘도 안 될지 모른다.”

 1968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진 뒤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은 비장하게 말했다. 백악관 참모를 모두 모아 놓은 앞에서였다. 2년 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자 존슨은 포괄적 총기규제법을 발의했다. 우편 구매 금지, 미성년자나 범죄경력자 등에 대한 판매 금지, 총기 등록제 및 소유 면허제 등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위헌 소지가 있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딴죽에 걸려 시간을 흘려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로 미국 사회가 비통에 빠지자 존슨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상원을 압박해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가 미처 손쓸 겨를도 없었다. 비록 상·하 양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총기 등록제와 소지 면허제가 법안에서 빠져버리긴 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총기규제법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코네티컷주 뉴타운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지난 4년 재임 중 그가 총기 참사 현장을 찾은 건 네 번째다. 매번 그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가족을 위로했다. 14일 사건 직후 애도 성명을 발표할 땐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16일 추모집회 연설에서도 ‘총기 규제’라는 단어를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폭력’을 근절하는 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하겠다고 에둘렀다.

 심지어 오바마는 지난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NRA를 비롯한 총기로비단체가 거세게 압박하자 한걸음 물러섰다. “수정 헌법 2조가 보장한 개인의 총기 소지 권리를 존중한다”며 꼬리를 내린 거다. 오바마로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쓰였던 무시무시한 소총에 6~7살짜리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11발이나 맞았다. 더 이상 무슨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할까.

 호주에서도 35명이 살해된 96년 ‘포트오서 참사’ 후 강력한 총기규제법이 도입됐다. 세 살배기 젖먹이부터 72세 노인까지 닥치는 대로 소총을 난사한 28세 청년의 광기에 호주 사회의 여론이 단번에 모였다. 법 도입 전 18년 동안 13차례나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건이 법 발효 후 14년 동안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미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로선 거리낄 것도 없다. 2014년 중간선거는 아직 멀었다. 더욱이 현재 의회도 임기를 보름여 남겨 놓은 ‘레임덕’ 상태다. 내년 새 의회를 구성할 의원 총선거는 지난달 끝났다. ‘보이지 않는 NRA의 손’에 의원들이 눈치 볼 까닭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절묘한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