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오세훈만 타깃 삼은 서울시 백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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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성운
사회부문 기자

“정말 나쁜 사업들이었다면 그 사업을 지휘했던 고위 간부들부터 징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얼마 전 한 서울시 공무원이 던진 질문이다. 지난 13일 서울시가 발간한 백서 ‘거울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는 “지금 박원순 시장 밑에서 요직에 중용돼 있는 인사들 상당수가 ‘나쁜 사업’과 깊은 연관이 있다”며 “사람은 두고 사업만 나쁘다고 하는 걸 누가 납득하겠느냐”고도 했다.

 ‘양화대교 구조개선공사를 통해 본 개선과제와 교훈’이라는 부제가 달린 백서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사업의 문제점들이 열거돼 있다. 서해뱃길 사업성을 부풀리고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한 채 강행했다는 내용 등이다. 박 시장은 발간사에 “과거 서울시는 시급성이 없거나 현실성이 부족한 사업에 많은 예산을 낭비했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적었다. 문제가 있는 사업을 지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다.

 문제는 서울시 공무원들조차 상당수가 그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 시장 시절 한강사업본부장을 지냈던 류경기 대변인,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상범 부시장, 대변인이었던 정효성 기획조정실장 등은 지금도 고위직을 맡고 있는데 당시 사업만 잘못이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 많다. 또 백서 발간을 주도한 감사팀에 대해서도 “오 시장 시절에는 뭘 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해당 사업들의 문제점을 줄줄이 쏟아내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민간 건설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가 걸려 있는 세빛둥둥섬, 과다 공사비로 논란이 된 신청사에 대해서도 백서를 내놓을 계획이다. 모두 오 전 시장 때 추진된 사업들이다. 한 공무원은 “그동안 34명의 시장이 거쳐갔는데 오 전 시장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행정을 펼쳤다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일부에서 ‘거울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우개 프로젝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 전 시장의 흔적 지우기 작업이라는 말이다.

 잘못된 행정을 반성하자며 만드는 백서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백서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려면 몇몇 고위직과 감사 관계자뿐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 모두가 취지와 내용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을 강조하는 박 시장이 정작 백서 제작을 위해서는 서울시 공무원들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묻고 싶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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