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지어, 돼지 키워 … 장학금 4억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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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참사람장학회’ 김공만 상임이사(오른쪽부터), 이갑열 이사장, 조안준 사무국장이 11일 농협 재단으로부터 받은 농협문화복지대상 상패를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사는 허철욱(69)씨는 매월 1만~3만원씩 지역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아파트 경비일을 하며 받는 100만원의 월급으로 부인과 함께 생활하지만 이 기부활동을 3년여 동안 이어오고 있다. 2009년 장학회를 처음 세울 때에는 기금으로 5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허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배움에 한을 지니고 있었다”며 “형편이 넉넉지는 않지만 지역 인재를 키우는 보람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민통선과 접한 파주시에서도 오지 지역인 파평면에는 ‘시민천사’ 108명이 활동 중이다. ‘파평 참사랑장학회’ 회원이 그들이다.

 파평면의 인구는 4384명에 불과하다. 파주시 관내 16개 읍·면·동 가운데서도 가장 적다. 대학과 고교는 없고, 중학교 1곳과 초등학교 3곳이 전부다. 관광자원도 화석정, 파산서원 정도가 고작이다. 전형적인 접경지역 농촌마을이다.

 이 같은 지역 여건을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이 한덩어리로 뭉쳐 나섰다. 지역주민들 힘으로 인재를 길러내 지역 발전을 이루기로 마음먹고 의기투합했다.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 ‘파평 참사랑장학회’를 설립해 장학사업에 들어간 것이다.

 장학회가 설립돼 운영에 들어간 것은 2009년 3월. 이갑열(71) 이사장의 제안에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제가 먼저 31년간 소와 돼지를 길러 모은 재산의 절반 정도인 2억원을 낸 후 주민들에게 동참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의 화답이 이어졌다. 19명의 주민이 500만~1000만원씩 1억원의 기금을 추가 출연해 총 3억원으로 장학회가 꾸려졌다. 은행 대출로 돈을 마련해 기금을 낸 주민도 있었다. 처음 85명으로 시작한 회원 수는 현재 108명으로 늘었고, 기금도 4억원으로 늘어났다. 회원들의 면면도 농업인, 경비원, 파출소장, 우체국 직원, 사업가, 상인, 혼자 사는 노인, 영세민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장학기금의 은행 이자와 매월 1만~10만원씩 내는 회비로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10여 명의 관내 초·중·고교생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올해의 경우 14명에게 총 1945만9000원을 지급했다.

 장학생 선발기준도 색다르다. 성적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예절과 심성이 바른 모범생이어야 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또 대학생의 경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졸업 때까지 등록금의 50%를 지원해 준다. 방학 때면 학생들을 마을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하며 진로와 생활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이 장학회 수혜자인 이대호(26)씨는 올해 명지대 경제학과를 마치고 파주연천축협에 취업해 지난 2월부터 이 장학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갑열 이사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일 농협재단(최원병 이사장)으로부터 제7회 농협문화복지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상금 2000만원 전액을 장학회에 기탁했다.

 김공만(60) 상임이사는 “앞으로 보다 많은 주민을 동참시켜 장학금 수혜자를 늘리고 소년소녀가장·영세민 가정 등에 대한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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