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성공하려면] 8. '국회다운 국회' 대통령이 앞장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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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통법부(通法部).거수기.

입법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국회를 일컫는 이 같은 말들이 이젠 우리 주변에서 영영 사라져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당 총재로서 국회를 마음대로 주물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뜻이라면 국회에서 법안 날치기 통과도 서슴지 않았다.

중앙일보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은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의 영역을 넘나들면 정작 국정 과제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국회를 강하게 만들고 대통령은 국회를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통령이 국회 위에 군림해서는 정책에 몰두할 수가 없다. 국회가 강해지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고,그것을 의식한 대통령은 대통령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황성돈 외국어대 교수)

국회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해서는 안된다. 또 당 운영체제도 개선해야 한다.

1979년 유신정권 시절 국회의 일방적인 제명동의안 처리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당시 "행정부가 국회를 경시하고,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는 비민주적 작풍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선 자신의 임기 중에 노동관계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본회의를 개최합니다. 먼저 의사일정 제 1항 국가안전기획부법 중 개정법률안을 상정합니다.…개정안에 이의 있습니까.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근로기준법 개정 법률안을 상정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96년 12월 26일 오전 6시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야당 의원들을 따돌리고 잠적했던 오세응 국회부의장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등 7개 법안을 단 7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대규모 파업과 재개정으로 이어지는 노동법 파동의 도화선이 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이처럼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국회 의사 일정은 여야 교섭단체 간 협의로 결정하고, 합의가 안될 경우 국회의장 직권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노동관계법 개정은 여당 의원들이 모두 모여 방망이를 두드리기 직전 형식적으로 야당 부총무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법적 절차를 대신했다.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의 동의가 있었기에 절차를 무시한 날치기가 가능했다.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에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를 사실상 대통령의 하급기관으로 취급했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들의 그 같은 시각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 스스로가 국회를 국정의 동반자로 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별취재팀>
김수길 부국장, 이하경 정치부 차장, 김종혁 국제부 차장, 이세정.고현곤.송상훈 경제부 차장, 이영종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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