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충격을 던져줄 스페인 영화 '마리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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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때때로 냉혹하리만큼 날카롭다. 10월 6일 개봉될 스페인영화 「마리포사」도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기보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섬뜩한 충격을 던져준다.

무대는 스페인의 평화로운 작은 마을. 그러나 시대배경은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들의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4년이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천식을 앓느라 집에서만 지내던 여덟살 꼬마 몬초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선생님의 매가 무서워 바지에 오줌을 싼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레고리오 선생님이 인자한 얼굴로 집까지 찾아와 학교에 나올 것을 설득하자 몬초는 마음을 바꾸고 금세학교생활에 친숙해진다.

선생님은 몬초에게 나비(스페인어로는 마리포사)의 혀가 시계 스프링처럼 돌돌말려 있다는 이야기 등 대자연의 신비를 가르쳐주고 "지옥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증오와 잔인함이 빚어낸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공화주의자인 아버지는 물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도 그레고리오 선생님이 무신론자라는 소문에도 개의치 않고 그의 인품에 감복한다.

잔잔한 성장영화처럼 전개되던 줄거리는 파시스트들의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갑자기 급류를 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당원증과 신문 등을 불태우고 몬초에게도 그레고리오 선생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부인하라고 주지시킨다. 그러던 어느날 밤 공화주의 핵심인물들은 파시스트에게 속속 체포된 뒤 이튿날 성당앞 광장에서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어머니의 재촉을 받은 몬초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레고리오 선생님을 향해 "빨갱이"라는 욕을 퍼부으면서 돌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이 탱크를 만나 환호하는 장면과 극단적 대비를 이루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헤밍웨이가 종군 경험을 살려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널리알려진 스페인 내전은 독일, 이탈리아, 소련, 프랑스 등 인접국은 물론 미주의 공화주의자까지 개인적으로 참전한 국제전이었다.

권력과 이념을 둘러싼 회오리바람은 한적한 몬초의 마을에까지 불어닥쳐 그레고리오 선생님이 말한 현실 속의 지옥을 연출한다. 극심한 좌우대립의 상처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관객들로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기 힘들다.

메가폰을 잡은 호세 루이스 쿠에르다 감독은 「떼시스」와 「오픈 유어 아이스」의 제작자로 이름난 인물. 이 영화로 스페인 산세바스찬 영화제와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세계의 추악함을 대비시키며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스페인의 '국민배우'로 꼽히는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그레고리오)의 원숙한연기와 마누엘 로자노(몬초)의 천진한 표정도 인상적이다.

몬초가 같은 또래의 소녀 오로라에게 호감을 털어놓거나 배다른 누나와 이웃 청년의 정사장면을 헛간 문틈으로 훔쳐보는 대목 등 성장영화의 상투적인 장면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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