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재혼은 주고 사별→재혼은…황당 국민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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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전시에 사는 김모(49)씨는 11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14세 딸을 키우기가 막막했지만 매달 32만3000원의 유족연금이 큰 보탬이 됐다. 남편이 사망 전 국민연금에 가입한 덕분이다. 그러다 김씨는 2010년 12월 재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연금은 원래 재혼하면 못 받게 되는데 미성년자 딸이 있어 만 18세까지만 받을 수 있다. 이런 규정으로 김씨는 2년 뒤 유족연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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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혼하면 유족연금을 못 받는 현행 규정이 노후 빈곤을 심화시키고 재혼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새 배우자가 생겼으니 이전 배우자의 연금을 더 이상 받지 말라는 뜻이다.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실 박상현 비서관은 9일 “재혼 후에는 새 남편에 기대 살라는 뜻인데 남성 중심 시대에 통하던 제도”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유족연금 박탈 규정에 걸린 사람이 한 해 500명이 넘는다. 국민연금 가입자나 황혼이혼이 늘면서 유족연금 박탈 케이스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연금은 연금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의 생계를 보조하기 위해 지급하는 제도다. 52만여 명이 받고 있다.

 유족연금과 다른 연금이 동시에 생긴 경우에도 유족연금은 박탈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문모(61)씨는 10년 전 남편을 사별하면서 매달 26만2330원의 유족연금을 받다가 2006년 3월 장애가 생겨 장애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겼다. 둘 다 받을 수 없는 규정 때문에 금액이 큰 유족연금을 택했다. 그러다 문씨는 지난해 말 재혼했고 유족연금이 사라졌다. 예전에 포기했던 장애연금(월 21만8730원)을 되살려 받고 있지만 월 4만3600원이 깎였다.

 같은 재혼이라도 사별 후 재혼이냐, 이혼 후 재혼이냐에 따라 연금이 확 달라진다. 이혼한 뒤 발생하는 분할연금은 재혼 후에도 계속 받을 수 있다. 황모(65)씨는 10여 년 전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 있는 남편(68)과 이혼하면서 남편이 받던 연금을 분할해 달라고 국민연금공단에 신청해 매달 13만원을 받게 됐다. 남편의 국민연금 중 결혼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씩 나눴다. 황씨는 이후 미국에서 재혼했지만 종전의 분할연금은 계속 받는다.

 최동익 의원실 박상현 비서관은 “사별 후 재혼하면 유족연금이 사라지는 규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상태로 사는 부부도 있다”며 “유족연금과 분할연금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구 소득이 일정액을 넘을 경우에만 연금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국민연금 가입자 3년치 소득의 평균(월 189만원)을 기준선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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