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학의 최고봉 세계 2번째로 완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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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보인 출판물중 양과 질에서 가장 공력을 들인 번역물로 꼽힐 만한 것이 정수일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다. 1, 2권을 합한 분량이 1천여쪽, 여기에 편집.장정에 들인 정성까지 보태져 더욱 각별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책이다.

각별하다는 표현은 이 책의 완역이 불역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발췌번역은 15개 언어로 이뤄짐)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옮긴이가 한때 아랍인으로 위장해 무하마드 칸수로 불렸던 사람이라는 점, 그가 북한의 평양외국어대학과 한국의 단국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복역 중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장본인이라는 `책 외적(外的)인 측면` 이 이 텍스트를 보통의 학술서 이상으로 만든다.

옮긴이가 `중세 인문지리학의 핵심자료` 이자 `인류가 공유할 가위 기념비적인 유산` 이라고 규정하는 이 책의 번역엔 복역기간을 포함해 1년9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을 옮긴이는 이렇게 회고한다.

"말 그대로 한증탕 같은 여름철, 더덕더덕 땀띠 돋아난 엉덩이를 마루바닥에 붙이고 하루 네댓시간씩 뭉개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유배생활 18년간 5백여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선생은 줄곧 앉아서 너무 오래 글을 쓰다보니 엉덩이가 짓뭉개져서 벽에 선반을 매고 일어서서 썼다고 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절차탁마하는 선현들의 의지가 이 책의 번역과정에서도 내내 옮긴이의 귀감이었다. " (제2권 4백28쪽)

이런 고백은 9년전 단국대 출판부에서 나온 『신라 서역교류기』에서의 고백과 함께 읽어야 한다. 당시 책의 머리말을 보면 자신이 `아랍인` 으로, 한국에서 연구를 하게 된 사정을 애써 `포장` 하고 있다.

동아시아로의 이슬람문화전파사와 관련한 학위논문을 위해 자료를 구하고 또 "가능하다면 글이나 읽을 정도의 한국어라도 배워보려고" 1984년 한국을 찾았다는 것이 당시 그의 말이다.

그의 특수한 처지 속에 나온 `거짓말` 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책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정수일이란 이름 아래 펴낸 대작업이고 국내 학계 공동의 학술적 재보(財寶)로 등재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현재 중세 아랍어에 익숙한 인력은 정수일 그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정수일은 중국 옌볜에서 출생, 베이징대 동방학부 졸업 뒤 카이로대에서 유학생활을 거처 북한의 외교관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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