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문학 발목잡기 언제까지…

중앙일보

입력

"어째 '월광으로 짠 병실' 을 읊던 박영희가 신경향파 문학으로 치달아 마침내 카프 결성의 중심분자로 나아갔으며, 또 뒷날엔 전향의 앞장을 설 수 있었을까. 어째서 '흑방비곡' 의 박종화는 '력(力) 의 예술' 에 기울어 '백조' 해체의 중심에 섰다가 '금삼의 피' 를 쓴 보수적 민족주의 노선인 역사 소설가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

태어난 지 꼭 1백년째인 박영희.박종화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왜 현실과 무관한 문학 활동을 펼치다 문학을 현실.이념.상황 등 문학 아닌 것에 예속시켰으며 그러다 또다시 다른 문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가고.

20일 열린, 올해로 탄생 1백주년을 맞은 문인 6명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한 '근대문학, 갈림길에 선 작가들' 이라는 세미나에서였습니다.

지난 1백년 동안의 우리 문학은 '갈림길' 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서구 열강이 문 열어라며 밀려들 때 개화냐 수구냐를 선택해야 했듯 우리 문학도 문학을 위한 문학이냐, 삶을 위한 문학이냐를 선택해야 했고 일제, 분단,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아직 우리 문학은 그 기로 위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 세기 1백년간 진보.보수, 좌익.우익으로 갈린 문단과 문학의 폐해를 절감하고 그것을 원점에서 검토하며 통합해보려는 노력이 문학계에서 일고 있습니다.

"민주화를 가로막으며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곡필을 일삼는 이문열씨의 소설들이 민족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통일여건 조성을 위한 취지로 발간되는 '통일문학전집' 에 수록될 자격이 있느냐. "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재승 의원이 서면질의한 이러한 내용이 밝혀지자 문인들은 분노를 넘어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문학을 뭘로 알며 문학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느냐고요.

'통일문학전집' 은 1998년부터 문예진흥원에서 남.북한에서 산출된 대표 문학 작품을 1백권으로 엮어내려는 책입니다.

최의원이 말한 대로 '민족 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통일여건 조성' 을 위한 취지에서 입니다. 이제는 체제와 이념을 넘어 민족의, 인간의, 삶의 동질성을 남북 문학을 통해 회복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최의원의 질의는 다시 이념이니, 그 무엇 아래 문학을 두려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문학이 무엇입니까. 정치입니까. 종교입니까, 현실입니까, 시대상황입니까, 역사나 사회과학입니까?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고도 거기에 우리 각자의 꿈을 얹어놓은 것이 문학 아니겠습니까.

어느 문인이든, 문학 작품을 읽는 어느 독자든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우리는 문학을 너무 문학 아닌 그 어떤 한 것으로만 보아왔습니다.

그래 우리 문학은 자업자득으로 지난 20년간 남한 문학을 대표해온 작가가 '통일문학전집' 에 끼여서야 되겠느냐는 물음까지 받기에 이른 것 아니겠습니까.

20일 세미나에서 김윤식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바랐습니다.

"21세기를 열고 가야할 또 하나의 '의식' 을 가꾸는 노력이 문학의 이름으로 주어지기를. "

지난 1백년간 우리 문학은 문학 아닌 다른 '의식' 에 너무 이용당해 자율과 자존을 스스로 해치지 않았나 반성케하는 대목입니다. 문학의 자율.자존은 넓고 깊은 우리 삶의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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