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20대女, 경찰 보고도 무표정…섬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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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상가 건물 3층 복도 엘리베이터 앞. 최씨가 한씨를 살해한 곳이다. [김윤호 기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60대 여성을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살해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피의자는 부산의 한 4년제 대학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한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상가 건물 3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한모(62)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최모(23)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6일 밝혔다. 최씨는 5일 오후 6시35분쯤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상가 건물 3층 복도에서 흉기로 한씨의 가슴 등을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씨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최씨는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장에서 체포됐다. 검거 당시 최씨는 범행 후 현장 옆 사무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한씨와 최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원한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올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에서 조교일을 하고 밤에는 부산 모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해왔다. 활발한 성격은 아니지만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등 평범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올 9월께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가 폐업한 뒤 매장 재고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학교에 알려졌다. 이때부터 조교 업무를 소홀히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 학교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다.

 말이 없어진 딸이 불안했던 최씨의 어머니는 이달 초부터 자신이 일하는 건강 관리업체에 데려와 함께 지냈다. 최씨는 직원뿐 아니라 손님들과도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판매점 내 사무실에 앉아 하루 종일 혼자 있었다. A4 용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로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최씨의 어머니는 “원래부터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진 9월께부터 웃지도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최씨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경찰의 질문에 ‘예’ ‘아니오’라는 말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눈물을 흘리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살해 동기를 확인하기 위해 심리전문가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한 경찰관은 “피의자가 2개월 사이 일자리를 동시에 잃은 충격과 고소사건에 연루된 일 등으로 정신적 장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며 “해리성 장애, 즉 다중인격 장애를 겪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를 6일 오후 구속한 뒤 정신감정 의뢰를 검토할 계획이다.

울산=김윤호 기자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다중인격으로 일컫는 질환이다. 성격 간 이동이 매우 급작스럽고 드라마틱하게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 각각의 인격이 한 일은 일반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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