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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기쁨을 함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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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나 팔라시오
전 스페인 외무장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지난달 29일 유엔총회에서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했다. 전체 193개 회원국 중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옵서버 단체에서 옵서버 국가로 지위를 한 단계 격상했다.

 이는 어떤 협상보다 팔레스타인, 나아가 중동 평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160여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겪은 직후 이뤄진 표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최근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이끌어 내면서 더욱 대담해진 하마스는 경쟁자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지원해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얻기 위한 행동에 나서 목적을 이뤘다.

 사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내년에는 팔레스타인을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유엔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도 미국은 지난해 9월 안보리에서 “중동의 균형상태를 깰 수 있다”며 팔레스타인의 유엔 회원국 가입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엔 정회원국이 되려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 전체를 포함한 9개 이사국의 찬성을 얻은 뒤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회원 옵서버 국가 자격은 유엔총회에서 단순 과반수만 얻으면 된다. 이미 전 세계 132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고 있으므로 유엔총회 표결 통과는 당연히 예상된 결과였다.

 이번 표결에서 유럽연합(EU)은 비록 전체 회원국의 의견일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팔레스타인이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얻는 데 기여했다. 우연하게도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 채택 65주년을 맞은 민감한 날에 이뤄진 이번 표결에서 유럽은 의견이 분열됐다. 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은 찬성을 공언했으나 독일·체코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영국은 입장 표명 없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미국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국가 지위를 얻게 된 팔레스타인은 앞으로 국경·난민·동예루살렘(1947년 유엔 결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영토이지만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안보·수자원, 그리고 이스라엘에 잡힌 정치범 석방 등 모든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팔레스타인이 국가 지위를 이용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스라엘의 적대행위를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일부 유럽 지도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팔레스타인이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나 팔레스타인 공습, 정착촌 건설 문제를 ICC에 제소한다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의 바탕인 시온주의를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사이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ICC제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유럽의 가치와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정받아온 국제법과 다자협상의 수호자로서의 유럽의 국제적인 위상을 스스로 허물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가 지위 부여는 사실 그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평화협상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 EU는 실질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필요한 정치적인 지원을 더욱 활발하게 해줄 수 있다. 사실 EU는 팔레스타인에 매년 10억 유로(약 1조4070억원) 상당의 원조를 한 것 말고도 사회개발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런 중요한 투표에서 유럽이 분열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유럽은 글로벌 재정 문제를 일으킨 문제아에서 강력한 세계평화 세력으로 이미지를 개선할 좋은 기회를 잃었다. ⓒProject Syndicate

안나 팔라시오 전 스페인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