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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다툼, 디자인 특허싸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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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강성욱
GE코리아 사장

필자는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을 대신할 기회를 놓친 것을 크게 아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는 절대로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한발 앞서 고민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법한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제3의 세계화’로 정의된다. 과거 서구 열강들에 의한 식민지 건설로 진행된 제1의 세계화, 산업화 이후 거대 다국적기업이 주도한 제2의 세계화에 이어 인터넷에 의한 글로벌화, 즉 시공간의 제약 없이 개인화되고 다원화된 주체에 의해 제3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수의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에 성공했다고 평가받지만, 제3의 세계화 흐름을 제대로 인식해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선 통신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발 측면에서는 국지적인 관점에 머물렀던 싸이월드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바라보는 국내 기업들의 관점에서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양사의 쟁송(爭訟)을 디자인 특허를 둘러싼 다툼이라는 1차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데, 필자가 보기에는 애플이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통해 ‘제3의 세계화’ 방식으로 구축한 자신들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

 제3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요인에는 분명 토머스 프리드먼이 자신의 저서 『세계는 편평하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보기술(IT)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보 접근이 용이해져, 과거보다 수평적인 구조가 되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를 돌파해낼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이 요구되는 리더십의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삼성-애플의 소송과 같은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다차원적 사고의 리더십’, 둘째, 조직의 관리나 문제 해결을 넘어 생태계의 흐름을 예측해 그에 맞는 변화를 선도하는 ‘변화추구 리더십’, 셋째, 증대하는 복잡성 속에서도 이해관계자와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포용과 결단의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조직에서 길러내려면 첫째, 조직을 수평적인 네트워크 구조로 변화시켜야 한다. 수평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다수의 젊은 세대가 현재의 수직적 조직 문화 속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수직적 조직은 다양한 사고의 반영과 공존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경영자들이 시장과의 접촉을 기업 내부의 수직적 보고 체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소셜네트워킹을 통해 직원·주주·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직접 소통을 늘려야 한다. 셋째, 현장밀착형 사고방식으로 전통적인 경영관리 역량을 넘어 특정 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력 생산성은 덧셈이 아닌 ‘승수 효과’로 나타나므로 머릿수보다는 개인의 창의력과 기술력을 배가시키는 리더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평균 능력을 1이라고 가정할 때 평균 이하의 능력을 가진 직원들의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곱셈의 법칙을 적용하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없다. 더욱이 노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인력 자체가 감소하고 있어, 개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이미 신흥시장으로 이동했다. 브릭스(BRICs)를 비롯한 신흥시장 국가들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2005년을 기점으로 개발도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선진국의 GDP를 앞섰다. 여기서 우리는 중심국가로 이동한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천연자원 또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자원 중에서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제3의 세계화 변화 물결 속에서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리더십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개발시켜 나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강 성 욱 GE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