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다미오(64·사진)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 교수는 28일 “삼성은 경영진과 직원들이 필요한 변화를 함께 실천했고, 일본 전자업계는 실천하지 못했다. 거기서 성패가 갈렸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신(新)경영’의 계기가 된 ‘후쿠다 보고서’의 작성자다. 중앙일보는 다음 달 1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임 25주년을 앞두고 후쿠다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87년 이 회장 취임 뒤 삼성전자 고문으로 영입돼 10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했다.
후쿠다 교수는 “삼성은 꼭 해야 할 일을 회사 전략으로 만들고, 이 전략에 맞춰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디자인을 경영자원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디자인을 경영자원의 요소로 인식하고, 어떤 제품을 만들지 말지 등 기획부터 생산까지의 전 과정에 디자인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19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진행된 이 회장의 개혁 드라이브가 오늘날 삼성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전자업체들에 대해서는 “디자인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구호에 그 친 것이 침체 원인”이라며 “1억 명이라는 내수 시장에 안주하면서 해외 시장 개척의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라고 진단했다.
중앙일보는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후쿠다 보고서’의 핵심인 ‘경영과 디자인’ 부분도 입수했다. 보고서에는 19년 전 ‘질(質) 경영’을 고민하던 이건희 회장과 경영진의 고민이 질문 형태로, 이에 대한 디자인 전문가들의 조언이 답변으로 담겨 있다. 보고서에서 삼성 경영진은 “왜 우리 디자인은 독창성이 떨어지는가” 를 포함해 40여 개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후쿠다 교수는 문항마다 상세한 답을 내놨다. ‘디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순히 형태나 색을 만드는 게 아니다. 제품의 편리성 연구에서 시작해 부가가치를 높여 이용자의 생활을 창조하는 문화 행위”라고 설명했다.
‘후쿠다 보고서’는 1993년 6월 4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이 회장에게 건네졌다. 이튿날 독일행 비행기에서 보고서를 정독한 이 회장은 임원진 200명을 프랑크푸르트에 소집했고, 사흘 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건희 신경영’을 선포했다.
박태희·이지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