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말하는 클래식 ② 성우 배한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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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배한성씨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오 솔레 미오’를 부르고 있다. 그는 “ ‘죽음은 모차르트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게 클래식 음악”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우 배한성(66)이 처음 만난 클래식 음악은 이탈리아의 ‘오 솔레 미오(O Sole Mio·나의 태양)’ 였다. 중학생이던 1960년이었다.

 “두 명이 짝을 맞춰 신문을 돌렸어요. 경험이 많은 사람을 ‘원보’라고 불렀는데, ‘원보’ 형이 배달이 끝나고 약수터에 올라가자고 하더라고요. 물을 마시고 나서 글쎄 그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멜로디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에요.”

 배씨는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아버지는 좌익사상에 빠져 그가 네 살 무렵 북으로 건너갔고 서울여상을 나온 어머니는 신여성이었지만 생활력이 부족했다.

 -전축도 드물었던 시절이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텐 테너스’라는 LP를 구했다. 주말이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전축이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들었다. 10명의 테너가 부른 아리아를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친구 어머니가 ‘전축이 해지겠다’고 할 정도였다.”

 배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사치고 허영이었지만 노래를 듣고 나면 뭔가 꿈틀대는 감정이 느껴졌다. 가사도 어려운 그걸 따라 불렀는데 주변에서 ‘너는 목소리로 먹고 살겠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자퇴와 입학을 반복했다. 덕수상고 야간부에 합격해 어렵게 졸업했다. 서라벌예대 1학년을 마친 67년 TBC(현 JTBC) 공채 2기 성우로 입사했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던 중 영화 ‘물망초’를 만났다.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가 성악가로 출연해 열창을 한 영화다.

 “68년인가 시민회관,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탈리아비니의 공연이 열렸어요. 해외 성악가들의 내한 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월급하고 맞먹을 정도로 비싼 티켓을 샀어요. 도니제티의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렀는데 어찌나 맛깔스럽게 노래를 하던지.”

 그가 성우로 활동한 지 벌써 47년. 그간 모차르트·베토벤·쇼팽 등 숱한 작곡가들이 배씨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85년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라고 말했다.

 -이유가 뭔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였다. 톰 헐스라는 배우가 모차르트 역할을 맡았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가 대결을 벌이는 구도였는데 모차르트의 ‘히히~’하는 웃음소리가 특이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저 역할을 꼭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세 번 더 봤다.”

 ‘아마데우스’는 이후 10년 뒤 TV에서 방영됐다. 그에게 더빙할 기회가 찾아왔다.

 -클래식 음악가들을 연기한 비결이라면.

 “목소리는 그 사람이 가진 또 다른 영혼이다. 그걸 표현하려면 상상 이 있어야 한다. 아마데우스를 연기하려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여러 번 들었다. 다른 음악가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순간이 찾아 온다.”

 -왜 클래식 음악인가.

 “나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도 호학(好學) 정신이 있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찾아서 들었다. 듣다 보니 목소리 연기에 필요한 다양한 식견을 배울 수 있었다. 성악가들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사랑도 갈등도 다 들어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할아버지는 수원에서 한의원을 하신 분이셨다. 집에 전축이 있었다는데 아버지가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를 즐겨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들으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는 주말 아침이면 아들과 함께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등 가벼운 음악을 즐겨 듣는다. 40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아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한 아버지의 노력이다.

배한성씨의 추천곡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 4번’

-차이콥스키 ‘1812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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