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화안정자금 어디에 쓰나 고심

중앙일보

입력

내년부터 유로화를 쓰게 되는 유럽 12개국이 외환보유액 처리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화 가치의 안정을 책임지게 됨에 따라 외환보유액을 과거처럼 많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은 자국 통화가치의 지나친 변동을 막는 한편 외국자본의 급속한 이탈 등으로 대외지불수단이 고갈되는 일이 없도록 쌓아두는 것인데, 이 중 통화가치 안정의 용도가 사라진 것이다.

현재 유로화 도입 국가의 외환보유액은 독일이 7백50억달러로 가장 많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각각 5백80억달러와 4백50억달러에 이른다.

독일의 경우 미국 국채로 4백48억달러, 금괴로 3백억달러(3천5백t)를 굴리고 있는 외환보유액의 처리를 놓고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와 정치권,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뜨겁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이 돈을 당연히 경기부양을 위해 쓰고 싶어한다. 국민의 돈인 만큼 8천1백만 국민에게 1인당 2천마르크씩 나눠 주자는 '속 시원한' 주장도 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의 관리자인 분데스방크의 에른스트 벨테케 총재는 "국가 재산인 이 돈이 경기부양을 위해 쪼개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 이라고 못박았다.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도 "난 손대지 않겠다" 고 선언했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들도 보다 적극적인 활용을 주문한다.

힐마르 코퍼 도이체방크 대표이사는 펀드 형태로 굴리면서 돈을 불려 20~30년 후를 대비하라고 충고했다.

골드먼 삭스의 토머스 메이어 수석연구원은 "달러가 강세인 지금 재정적자나 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 고 주장했다.

또 휘포페어라인스 방크의 마르틴 휘프너 연구원은 캐나다와 칠레의 예처럼 국가재난기금으로 쓸 것을 권고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한창인데, 두 나라는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의 제안대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몇몇 나라는 급한 대로 경기부양과 고용증진을 위해 이 돈을 돌릴 계획이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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