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시의 맛은 유명세에 있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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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화석' 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보드라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자국으로 그대로 굳어 화석이 된 빗방울을 말한답니다.

우리 나라 우포늪 등지에 가면 이런 빗방울화석을 볼 수 있답니다. 빗방울의 유동성과 찰나, 그리고 화석의 견고성과 영원이라는 이율배반이 합쳐지며 묘한 여운을 남기는 '빗방울화석' 을 모임의 이름으로 삼은 시인들이 최근 공동시집 『산늪』(나무생각.5천원) 을 펴냈습니다.

지난 7년여간 함께 원시적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해발 1천m 이상의 산늪을 함께 다니며 쓴 26명의 시를 모았군요. 연배나 등단 여부, 시력(詩歷) 에 관계 없이 가나다 순으로 시를 싣고 일체의 약력은 싣지 않아 시 자체가 맨살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게 꾸민 것이 이 시집의 특징입니다.

"산은 산대로 안개는 안개대로 고원으로 올라간다. 앞선 발걸음에 발걸음 울려 가는 고원, 바람은 초록빛 이슬을 초원에 문지르고 고원길로 들어선다.

내 뒤에서 더 높이 뜨는 산, 산, 잠시 뭉친 생각들 잠기다 다시 솟구친다, 내 봉우리는 늪에?//갓핀 억새풀 물살지어 찰랑 찰랑, 내 몸에 찼다가 가라앉아 얕고 깊어지는 늪, 빛이 흐른다, 물이 흐른다, 길없이 모두들 시원으로 돌아갈 때 물땡땡이 찍어 한결 투명해지는 늪, //안개 바람 쓰고/늪에 흘러온 그대들은?/물봉선? 설앵초? 흰제비란? 황새풀?" (손필영의 '단조늪' 중)

안개 바람 쓰고 이 시를 따라 그 늪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초들의 이름을 묻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다 문득 마음 속으로 흥건히, 쓸쓸히 가라앉아 그럼 '나는 누구?' 하고 묻고 싶지는 않습니까. 단지 시인의 유명세를 따라서가 아니라 시 자체를 따라서요.

지난 며칠간 진행자로서 '중앙신인문학상' 예심에 참가했습니다. 기교나 깊이의 부족으로 예심에서 떨어지는 시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시의 참 모습은 무엇이고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떠올리는 시들도 많습니다. 표현이 모자라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그런 시에는 따뜻한 인간성이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원초적 마음과 시를 일치시켜보려는 순수함이 들어있습니다.

"9월, 햇빛 따갑고 바람 싸늘한 자브치르, '고요' 를 캐러 작은 둔덕을 내려갔다. 물 흐른 자국을 찾아 빠르게 앞서가는 고비 노인, (중략) /잎도 줄기도 없이 땅 속 깊이 고요히 들어앉은 '고요' , 돼지감자 같고 마 같은 '고요' , 베어 물면 입안에 도는 흙내와 물기와 비릿한 단맛, 입안 가득 메어오는 공복," (신대철의 '고요' 중)

중진 시인 신대철씨의 시도 시집 중간에 수줍게 들어 있군요. '대가급' 시인의 시답게 고비 사막의 '고요' 라는 식물에서 고요의 깊은 의미를 입맛으로 잡을 수 있게 형상화하고 있군요. 이렇듯 이번 시집에는 대가급 시인에서부터 아마추어 시인들의 시를 나란히 늘어놓고 있습니다. 판단은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내려라면서요.

이번 시집을 읽으며 우리 시단은 소위 '뜨는 시인' 들만 집중 조명하고 있지나 않나 우려됩니다. 그리고 시의 원초적 시성을 잃고 시를 학문.사회과학에 너무 예속시키지나 않았나 반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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