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인수위 명단 보고 놀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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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분과의 위원 8명 중 2명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해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명단이 발표된 뒤 어느 경제부처 장관이 한 말이다.

*** 재계 '노무현 경제팀 연구' 비상

고위 관료가 이럴진대 민간 경제인들에게는 더 낯설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부터 경제계에 별 인연이 없다 보니 "당선자가 나온 부산상고, 장관을 지낸 해양수산부, 가족.친척이 다니는 LG그룹.우리은행이 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연줄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르는 것'만큼 불안한 게 없다. 그래서 요즘 기업마다 '노무현 경제팀 연구'에 비상이다.

기업들이 더 불안해하는 게 있다. 개혁.진보성향의 학자들이 대거 포진한 인수위의 구도다.

"우리 시장은 결함이 많은 시장이다. 재벌체제 때문이다" "1인 지배체제.선단식 경영을 포기하지 않는 재벌 하나만 응징하자" 인수위원들의 과거 발언.기고문을 보면 이처럼 재벌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은 게 많다.

재계 분위기를 감안한 듯 인수위측은 최근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등 여러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불안감이 해소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헷갈린다는 반응이 많다.

총론에서는 "개혁은 장기적.점진적.자율적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를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겠다"는 등 '자율적'이나 '점진적'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들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원에 과학기술 전문가, 국제경쟁력 문제를 전공한 사람 등이 안보인다는 점도 기업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개발.통상외교 강화.노사안정 등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 정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갖고 있는지 아직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인사는 "정부가 '기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어 주려면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가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이런 차원에서라도 기업인을 차기 정부에 각료로 발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업 심리가 위축되면 투자도 준다. 투자를 안하면 미래가 없다. 이 점에서 정부는 올해 기업투자를 경제운용의 중점 지표로 삼았으면 한다. 과거를 보면 정부가 바뀐 해엔 대체로 투자가 부진했었다.

김영삼 정부 첫해인 93년에는 전년대비 0.3% 증가에 그쳤고 김대중 정부 때인 98년에는 외환위기까지 겹쳐 마이너스 38%로 곤두박질했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최근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해외로 자꾸 빠져나가는 바람에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새 정부 첫해인 올해 경제를 얼마나 잘 꾸려나갔느냐는 기업투자와 외국인투자가 말해줄 것이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 경제도 살찌기 때문이다.

*** "기업인을 각료 발탁했으면"

물론 기업들도 달라져야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2백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들이 투명하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투명성만 보장되면 주가도 한 단계 확 오를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꺼리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분식회계.내부자거래 등으로 얼룩진 불공정 행태다.

소액주주에 믿음을 줘야 이들이 주식을 사고, 고객 신뢰를 얻어야 제품이 팔린다. 재벌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병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