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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赦免
미국의 ‘president’는 한자 문화권에 들어온 뒤 중국에서는 대총통(大總統)으로, 일본에서는 대통령(大統領)으로 의역됐다. 대총통의 흔적은 대만에 남아 그 최고 통수권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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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은 ‘애국노인’ 마상보
▶1929년 겨울 정·관계와 학계 인사들이 뤼야탕(綠野堂)에 칩거 중인 마상보(앞줄 왼쪽 둘째)를 방문했다. 마상보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원로 대접을 받았지만 권력을 행사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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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은 ‘애국노인’ 마상보 칩거 장소
1929년 겨울 정·관계와 학계 인사들이 뤼야탕(綠野堂)에 칩거 중인 마상보(앞줄 왼쪽 둘째)를 방문했다. 마상보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원로 대접을 받았지만 권력을 행사한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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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위대한 쑨원’에 관한 오해와 진실
한·중 현대 지도자론 (상) 지난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중국·대만이 경제통합의 길을 걷는다는 빅뉴스를 접하면서 현대 중국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쑨원(孫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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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9) 장제스·다이지타오
▲고시원장 시절의 다이지타오. 다이지타오는 중국 공산당의 발기인 중 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 다르다며 창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장제스 집권 후 20년간 고시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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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다이지타오, 일본여자와 한방서 살다 득남
고시원장 시절의 다이지타오. 다이지타오는 중국 공산당의 발기인 중 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 다르다며 창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장제스 집권 후 20년간 고시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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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 임오군란 뒤 14년간 용산 근거로 ‘조선총독’ 노릇
위안스카이(1859∼1916·사진)는 중국과 한국의 근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탐욕과 교활, 치밀한 인맥관리와 탁월한 외교적 수완이 교직된 괴걸(怪傑)이자 난세의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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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첩 10명 거느렸던 위안스카이(전 중화민국 대총통) 5대손 미국 에미상 받아
위안스카이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1911년) 이후 들어선 중화민국에서 대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袁世凱·사진:1859∼1916)의 5대손이 미국에서 에미상(방송대상)을 받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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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수밍과 마오쩌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량수밍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건강이 좋아졌다. 1986년 93세 때의 모습. 김명호 제공 중국의학원 설립자 위안훙서우(袁鴻壽)는 10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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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량수밍과 마오쩌둥
▲량수밍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건강이 좋아졌다. 1986년 93세 때의 모습. 김명호 제공 중국의학원 설립자 위안훙서우(袁鴻壽)는 101세 생일에 제자들 앞에서 한마디 했다.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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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수밍과 마오쩌둥
량수밍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건강이 좋아졌다. 1986년 93세 때의 모습. 김명호 제공 중국의학원 설립자 위안훙서우(袁鴻壽)는 101세 생일에 제자들 앞에서 한마디 했다.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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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지키던 중국, 연합국 도왔지만 돌아온 건 배신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프랑스 후방의 군수공장에서 프랑스인 부녀자들과 일하고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 김명호 제공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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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량스이
▲프랑스 후방의 군수공장에서 프랑스인 부녀자들과 일하고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 김명호 제공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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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지키던 중국, 연합국 도왔지만 돌아온 건 배신
프랑스 후방의 군수공장에서 프랑스인 부녀자들과 일하고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 김명호 제공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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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新중국 건국 전야④ 중난하이 새 주인들
▲중난하이 8대 명소 중 하나인 자광각(紫光閣) 앞에서 담소하는 중난하이의 새로운 주인들. 왼쪽부터 주더, 마오쩌둥, 천윈, 저우언라이. 김명호 제공 베이징을 대표하는 맥주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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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입주 앞서 1000명이 5개월간 대청소
중난하이 8대 명소 중 하나인 자광각(紫光閣) 앞에서 담소하는 중난하이의 새로운 주인들. 왼쪽부터 주더, 마오쩌둥, 천윈, 저우언라이. 김명호 제공 베이징을 대표하는 맥주의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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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국무총리는 왕조 시대의 재상에 비견할 자리다. 재상은 흔히 ‘군주를 보필하고 행정을 책임지는 2인자 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말만 2인자일 뿐 실제로는 군주의 힘과 야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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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차이어와 위안스카이의 은원
위안스카이의 권력 기반이던 북양군이 훈련받고 있다(왼쪽 사진). 황제 즉위 직전의 위안스카이(오른쪽 사진). 김명호 제공 1913년 가을 위안스카이는 쑨원의 제2차 혁명을 무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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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꿈꾸는 총통, 공화제 꿈꾸는 호랑이를 풀어주다
위안스카이의 권력 기반이던 북양군이 훈련받고 있다(왼쪽 사진). 황제 즉위 직전의 위안스카이(오른쪽 사진). 김명호 제공 1913년 가을 위안스카이는 쑨원의 제2차 혁명을 무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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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차이어와 위안스카이의 은원
▲1915년 겨울 호국군 장군들과 함께한 차이어(蔡鍔·가운데). 김명호 제공 차이어(蔡鍔)는 16세 때 2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는 무일푼이었다. 위안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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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을 ‘暴亂 세력’으로 규정한 30대 장군
1915년 겨울 호국군 장군들과 함께한 차이어(蔡鍔·가운데). 김명호 제공 차이어(蔡鍔)는 16세 때 2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는 무일푼이었다. 위안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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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워치] “청나라 역사 복원하라” 학자 1500여 명에 2400억원 투입
◆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가 25일 오전 10시 서울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한국 기업 투자유치를 위한 ‘무단장시 프로젝트 및 관광설명회’를 연다. ◆ 지난달 26일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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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위안스카이(袁世凱)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시절의 위안스카이(가운데). 김명호 제공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오척 단구였다. 다리가 짧고 상체는 통통했다. 항상 팔자로 걸었다. 서 있을 때나 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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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 영웅들 농락한 ‘무서운 천재’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시절의 위안스카이(가운데). 김명호 제공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오척 단구였다. 다리가 짧고 상체는 통통했다. 항상 팔자로 걸었다. 서 있을 때나 걸을 때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