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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7) 대범한 이 대통령
국군의 전력 증강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의 전방부대를 시찰했을 때의 모습. 작가 박도씨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사진을 정리해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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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6) 이승만 대통령 상대하기
1952년 첫 직선으로 대한민국 2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에 있던 임시 경무대 뜰에서 포즈를 취했다. 당시 77세의 이 대통령은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로서 늘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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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5) 백마고지의 혈전
6·25전쟁 중반에 벌어진 고지 쟁탈전 중에서 가장 격렬했던 게 백마고지 전투다. 국군 9사단은 중공군 38군 산하의 3개 사단 병력을 맞아 10여 차례에 걸쳐 고지를 뺏고 뺏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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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4) 불붙은 고지 쟁탈전
그러나 전선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대구의 육군본부에서는 아침 9시가 되면 늘 브리핑이 열렸다. 나는 육군본부에 늘 일찍 출근했다. 규정보다 한 시간 이른 8시에 육본에 도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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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3) 무더기 장군 진급
1951년 7월 열렸던 육군 병참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밑에서 중앙정보부를 이끌었던 이후락 정보부장은 52년 백선엽 참모총장이 지휘하는 육군본부에서 병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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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2) 먼저 닥친 인사 문제
1951년 6월 12일 강원도 속초의 국군 1군단 사령부를 방문한 정일권 제5대 육군참모총장(오른쪽). 백선엽 소장(왼쪽)은 당시 1군단장으로 정 총장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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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01) 까다로운 이승만 대통령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당시로선 드물게 국제적 시야를 가진 지식인이었다. 사진은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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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200회 특집] 60년 전 한반도 ‘별들의 전쟁’
나는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으로 부임했다. 그 전까지 국군 1사단장, 1군단장, ‘백 야전전투사령부’ 사령관, 2군단장을 차례로 맡으면서 전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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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9) 참모총장이라는 자리
1952년 8월 이승만 대통령(가운데)이 미 8군과 8군 사령관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면서 공적 내용을 읽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은 제임스 밴플리트 8군 사령관, 왼쪽은 그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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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8) 1952년 여름, 갑작스런 결정
국군은 무기도, 보급도 부족한 상황에서 오로지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전선으로 나아가 적을 맞아 싸웠다. 6·25전쟁이 터진 뒤 젊은 장정들이 자진 입대를 위해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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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7) 국군 현대화의 초석
중공군은 1953년 휴전협정 조인 직전 국군 2군단 방어지역인 금성 돌출부를 향해 막바지 대공세를 퍼부었다. 백선엽 장군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중공군의 이 같은 막바지 총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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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6) 불을 뿜는 2군단 야포
1952년 2월 아군의 4.5인치 로켓포가 적진을 향해 불을 뿜고 있다. 국군 2군단은 52년 5월 금성 돌출부 너머의 중공군을 향해 2만 발의 포탄을 발사해 막대한 타격을 입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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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5) 중공군을 겨눈 포신
미군 포병대의 155㎜ 야포가 1951년 서울 북방을 공략하려던 중공군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다. 국군은 6·25전쟁이 터진 뒤 1년6개월 정도가 지난 52년 초반쯤에야 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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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4) 중공군의 이상한 움직임
중공군은 1950년 10월 참전한 뒤 압도적인 병력으로 국군과 유엔군을 압박했다. 52년 4월 다시 출범한 백선엽 장군의 국군 2군단은 강원도 금성지구 돌출부의 전선 너머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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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2) 2군단 창설식
현대전 수행능력을 갖춘 2군단의 창설로 국군은 면모를 일신했다. 사진은 군단 창설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백선엽 장군 제공] 새로 창설한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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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90) 낯선 화장실
목욕을 하는 시설, 지금이야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샤워기가 달려 있는 곳으로 화장실쯤 되겠다 싶어 들여다 본 그곳에는 이상한 물건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베니어합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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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소양강에서 일으킨 국군 (189) 2군단의 진용을 갖추다
기회는 늘 닥치지만 왔을 때 잘 잡아야 내 것이 된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한반도가 전화(戰火)에 휩싸인 뒤 미군이 급히 몰려오고, 여러 나라가 유엔의 이름으로 지원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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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7) 지리산을 떠나며
병(兵)은 흉(凶)이다. 나는 동양의 아주 오랜 지혜에서 나온 이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 군사(軍事)의 모든 것을 일컫는 ‘병’은 그 근본이 결코 상서(祥瑞)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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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6) 찾아온 고아들
2009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를 도와주는 이왕우 보좌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희는…백선 육아원 원생 출신입니다. ‘대장(大將) 아버님’ 좀 찾아뵈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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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5) 고아들을 품에 안다
1952년 백선엽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광주 송정리에 있는 ‘백선 육아원’을 찾아 원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백선 육아원은 지리산 토벌을 마무리 지은 뒤 부모를 잃은 빨치산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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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4) 토벌작전의 마무리
소백산맥의 연봉(連峰), 지리산의 깊은 품과 인근의 높고 낮은 산에서 활동을 펼쳤던 빨치산. 그들은 동족(同族)임에는 분명하지만, 신생 대한민국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존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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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183) 되돌아 본 182회 대장정,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
60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6·25전쟁은 수많은 희생과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전쟁을 통해 일어섰다. 미국의 물자와 시스템은 이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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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2) 이현상의 죽음
한 달여 동안 지리산과 백운산을 공격했던 수도사단은 빨치산 1867명 사살, 1055명 생포의 전과를 올렸다. 회문산과 백아산, 조계산과 화학산 일대에 숨어든 빨치산을 뒤쫓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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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1) 끝을 드러낸 토벌작전
겨우 17~18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 아이들이 일부는 바위 틈에 앉아 있었고, 일부는 총탄에 맞아 숨져 있었다. 그 모습들이 하도 이상해 자세히 살펴봤지만 분명 앳된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