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부통령」불린 차지철(청와대비서실:18)

    ◎“각하 뜻”팔아 요직에 자기사람 기용/주요인사 뒷조사 비리·약점 훤히 파악/말기엔 제왕학·부인은 “왕비수업”소문 서슬퍼런 유신후반기에 박정희 대통령을 대리하다시피 청와대·당·내각

    중앙일보

    1991.03.22 00:00

  • 2중성격 지닌 차지철(청와대비서실:15)

    ◎“학생·신민당 탱크로 뭉개버리자”/부끄러운 출생비밀… 열등·우월감 교차/첫 결혼 실패한 이후 독실한 신앙생활 인간 차지철은 괴팍하고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중앙일보

    1991.03.01 00:00

  • 윤 장군과 육사11기(청와대비서실:10)

    ◎12·12후 다시 빛본 윤필용/낭인생활도중 사면… 도공사장 취임/청년장교시절부터 “형제”같은 사이 화무십일홍이요,권불십년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가. 또 인생은 유전이요,권

    중앙일보

    1991.01.18 00:00

  • “광주사태에 책임일부 통감”/전씨 국회증언 지상중계/광주특위

    ◎상처 근원적으로 치유못한 점 반성/12ㆍ12 이전에 정승화 장군 체포하려 했다 ▲10ㆍ26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으로부터 12ㆍ12사태=79년 국내정국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

    중앙일보

    1990.01.01 00:00

  • "군부내 사조직은 절대 없어야"

    정승화씨 증언 ◇심명보 의원(민정) 신문-10·26이후 3김씨를 겨냥해 한 분은 무능, 또 한 분은 부패, 또 한 분은 사상적으로 불투명하다고 말한 걸로 돼있는데. 『세 지도자를

    중앙일보

    1988.12.01 00:00

  • (4)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5·18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 광주사태, 국보위발족을 거쳐 제5공화국을 출범시킬 때까지의 주역은 3장군과 대령들이었다. 모든 일이 치밀한

    중앙일보

    1988.04.21 00:00

  • 박정희와 유신시대"재현"

    K-TV의 수목 드라머『욕망의 문』(김기팔 극본·최상식 연출)이 3일부터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시대를 국내TV 드라머 에서는 처음으로 다룬다. 특히 박 대통령 역을 중견연극배우

    중앙일보

    1988.02.02 00:00

  • (23)D데이는 장군진급 심사 끝난 12일

    그날 밤의 사태 이전에도 심상치 않은 어떤 흐름은 있었다. 박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권력의 공백 때문에 계엄령이 발동되어 있기는 했어도 비교적 평온했다. 계엄 업무는 계엄사령관의

    중앙일보

    1987.11.16 00:00

  • (22) "「슈퍼살롱」을 찾아라" 긴급명령

    12월12일 하오 5시40분쯤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은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갔다. 그는 당초 6시에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

    중앙일보

    1987.11.14 00:00

  • 실록 80년 서울의 봄(21)새 질서 예고…한남동의 총성-12·12의 서울 표정

    12·12사태가 대통령선거의 뜨거운 쟁점의 하나가 되었다. 12· 12사태의 당사자인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의 민주당 입당이 7년11개월전의 어느 한밤으로 우리의 기억을 되돌려 놓고

    중앙일보

    1987.11.13 00:00

  • 실록 80년 서울의 봄 "폭력으로 정부전복 기도 한다기에…"

    박대통령의 메모 80년 서울의 봄은 안개정국으로 불렀다. 최규하 대통령 정부는 안개속에서 출범했다. 그 봄이 안개속의 모색에 맴돌다 끝난것은 최규하 과도정부의 한계였을지 모른다.

    중앙일보

    1987.09.29 00:00

  • (4)

    유신체제 1기의 후반 2년 박대통령의 통치는 표면상 순탄했다. 학원과 종교계의 민주화 요구, 도시산업선교회와 가톨릭 농민회의 노동운동, 그리고 미국의 인권외교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중앙일보

    1987.09.11 00:00

  • 실록 80년서울의 봄 박대통령 힐책에 차실장 맞장구

    여야 수뇌 불신감 깊어져…김총재 체제 거부가 비극의 불씨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는 유신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박대통령에게 가장 오랜 기간 중용된 측근중의 한사람이다. 그런 그가 왜

    중앙일보

    1987.09.08 00:00

  • "부정축재자 환수땅 싸게 사준다" 기관원 사칭 85억사취

    치안본부는 22일 모기관간부등 공직자를 사칭, 정치자금을 조성키위해 부정축재자들로부터 환수한 서울가락·양재·개포동등의 땅을 염가로 매각한다고 속여 건축업자인 벽진건업대표 정병수씨(

    중앙일보

    1984.11.22 00:00

  • 무거운 짐들다 허리 삐어 아픕니다

    35세의 비만한 남자입니다. 1주일 전 무거운 짐을 들다 허리를 삔 후 아프기 시작, 3일간 약을 먹고 파스도 붙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우측 허리띠 부분이 많이 아프고 움직이면

    중앙일보

    1982.03.13 00:00

  • 교과서를 두 번쯤 더 복습하라

    82학년도 대학입학학력고사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입학력고사위원회(위원장 김재규)는 23일 회의를 소집, 고사 실시에 따른 최종 점검을 끝내고 출제 기준을 확정했다.『예년보다

    중앙일보

    1981.10.24 00:00

  • 3면에서 계속

    앞서 살핀바와 같은 사정만으로 허구의 것임이 명백하거니와 원판결이 적법하게 거시하고 있는 증거들에 의하여 더 나아가 이점을 밝혀 보기로 한다. 피고인 김재규는 1976년 12월 4

    중앙일보

    1980.05.21 00:00

  • 정승화 군재 판결문 요지

    피고인은 1979년2월1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같은 해 12월13일 그직에서 해면된자로서 고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주범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980년1월28일

    중앙일보

    1980.03.13 00:00

  • 정승화전 육참모총장 군재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판단 첫째, 피고인은 김재규가 각하시해범인줄을 몰랐으며 김계원으로부터 들어서 비로소 알았다고 변소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궁정동식당에서 김경섭과 식사중

    중앙일보

    1980.03.12 00:00

  • 김계원증인 일문일답(정승화)

    (법무사 심한준 중령이 밝힌 내용) ◇검찰관신문 ▲증인은 검찰관으로부터 참고인으로 조사받을때 사실대로 진술하고 부인했는가. - 그렇다. ▲육본에 갔을때 『김재규가 군부를 장악한

    중앙일보

    1980.03.11 00:00

  • 정승화 군재 변호인반대신문

    (하오4시35분 속개) ▲김재규와는 동향인가. -아니다. 그는 선산이고 나는 김릉이다. 단지 도가 같다는 것뿐이다. ▲김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군대 선배여서 감정

    중앙일보

    1980.03.06 00:00

  • 정승화 전 육삼총장 공소장

    피고인은 본적지에서 정시영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47년 서울광신산업학교를 졸업, 48년 4월 육사 제5기생으로 졸업과 함께 육군소위로 임관됐다. 그 후 육군방첩부대장·제7사단장·육본

    중앙일보

    1980.03.05 00:00

  • 김계원 피고 공소장변경 「내란살인」을 「단순살인」으로

    김계원·김태원 피고 사실심리 김재규·김계원 등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피고인 7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22일 상오10시 육군본부 대법정에서 열려 김계원(57·전 대통령비

    중앙일보

    1980.01.22 00:00

  • 김재규등 피고인들 최후진술

    김재규피고인 나는법이 허용하는 한까지 최후진술을 하겠다. 현재 우리들은 감정적이고 감정이 몹시 앞서있는상태이기 때문에 사리판단이 지나치기 쉽다. 내가 내란죄로 심판을받는 것도 그런

    중앙일보

    1979.12.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