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내 사조직은 절대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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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씨 증언
◇심명보 의원(민정) 신문-10·26이후 3김씨를 겨냥해 한 분은 무능, 또 한 분은 부패, 또 한 분은 사상적으로 불투명하다고 말한 걸로 돼있는데. 『세 지도자를 평한 적 없다. 월간지 기자가 그러한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는걸 단호히 부인하지 않자 긍정한 것으로 생각해 월간지에 그렇게 썼다. 후에 바로 잡아 주겠다더니 정정하지 않고 있다.
-79년11월26, 27일 언론계 사장단과 간부들을 두 차례 초청, 특정인을 지칭해 「그 사람은 공산주의자이며 육군 소위 자격도 없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가는 공산주의 사상가다. 그가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 고 말한 게 사실인가.
『당시 중정이 작성한 신상기록(김대중 씨를 지칭) 을 본적이 있는데 그 기록을 보고 본인이 생각한대로 얘기한 것이다.
-김재규에게서 3백만 원을 언제 받았나.
『73년 추석인데 정보부장 비서실장이 봉투를 놓고 가 뜯어보니 3백만 원짜리 수표가 있었다.
-그 같은 것이 관례인가, 특례인가.
『평소에 정보부장이 대통령에게 충성을 해야하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걸로 알고 있었다. 추석명절이라 그 같은 선물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이 주었다고 생각했나.
『나는 3백만 원이지만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백만 원, 기타 몇몇 군단장들에게도 5백∼6백만 원을 주었다.
-증인은 당시 국내정세가 조용했다고 했는데.
『12·12이전의 상황이다. 10·26이 나고 국민전체가 동요하지 않고 슬픔에 젖어 있었으며 과거를 반성하고 민주정부수립을 바라고 있었다.
-왜 김재규가 하자는 대로 병력출동을 위해 육본으로 갔는가.
『김재규가 하자는 대로 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간 것이다.』
-증인은 병력출동 상황을 김재규에게 설명했나.
『조작이다. 그후 김재규를 만난 일이 없는데 김정섭이 조작했다. 김정섭이 사전에 몰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김정섭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지시했는데 전 사령관은 김이 모른다고 한다고 했다.』
-김계원에게서 김재규가 범인이란 소리를 듣고 체포 지시를 내리면서 정중히 모셔오라고 했다는데.
『조작이다.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고 해서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뜻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지시를 한 것이다.』
◇김영종 의원(평민) 신문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사태 4일전 노태우 9사단장을 사령관 실로 불러 허화 평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김재규 사건에 대해 브리핑해 주고, 거사도 개각을 하루 앞둔 12일 단행했는데 이것이 내란 예비음모 아닌가.
『만약 사실이라면 그렇다.』
-당시 9사단장인 노태우씨는 탱크·야전포, 심지어 대전차 토미사일까지 동원해 통일로를 따라 서울로 들어와 중앙청을 장악했다. 미국은 AP통신을 통해 이러한 행동은 군인으로서의 기본적 예절이나 지휘계통도 무시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깬 것이라고 말했는데 방위조약의 어떤 부분을 위반한 건가.
『전투부대 작전 권은 한미연합사에 있다. 연합사의 사전 승인이나 양해 없이 군을 이동했으면 방위조약을 위반한 것이다.』
-증인은 12·12의 주축이 된「하나회」를 아는가.
『사건이 난 후 그런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회는 고문에 윤필용 박종규, 후견인에 진종채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회장에·전두환, 11기에 노태우 정호용 권익현 안교덕, 12기에 박희도 박세직 박준병 안필순(33사단장으로 당시 국회를 차단한 지휘관), 13기에 최세창 정동호, 14기에 이춘구 안무혁 배명국 박정기, 15기에 고명승, 16기에 장세동 정순덕, l7기에 허삼수 허화평 안현태 김용갑 김진영 이현우, 18기에 이학봉 등이다.
『그런 사조직이 있다면 국방력을 무력화해 국방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다. 만약 있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
-최근에도 이와 같은 사조직이 이어지고 있고 이와 유사한 정호용씨의 불암회 등도 있다.
『철저히 없애야 한다.』
◇오경의 의원(민주) 신문
-김재규 체포 시부터 12·12 강제 연행될 때까지 김씨 수사에 대해 간섭하거나 변경을 지시한일이 있는가.
『수사전모 발표를 할 때 김씨 일당을 공개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내용을 문안에 넣으라고 지시한 것이 유일한 지시다.』
-노태우씨는 관훈클럽 토론에서 증인이 군사재판을 지연시키며 영웅화하는 행동을 해군내부의 불안을 사고 있어서 연행했다고 했는데.
『오히려 이런 중대한 사건의 사실 심리가 며칠 안에 끝나 의심을 사고 있다는 얘기까지 당시에 있었다.
◇박찬종 의원(무) 신문
-노태우 대통령은 관훈 클럽 토론회 등에서 정 총장을 모시러 간 사람을 총장공관경비대가 쓰러뜨려 비극의 발단이 됐다」 고 했고 증인은 우경윤 범죄수사대장의 부상은 출동 부대끼리의 오인 사격 때문이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밝혀달라.
『노태우씨는 거짓 보고 받았을 것이다. 나의 부관·경호장교 등은 무장해제 돼 무장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경윤 씨가 맞은 것은 출동부대끼리의 상호사격 때문이다.』
-(증인 말이 맞는다면 노태우씨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한다) 고문 받았을 때 혀 깨물고 죽고싶은 심정이었다는데 맞느냐.
『그렇다.』
-노태우씨는 9사단 병력이동과 관련, 「주저항 선에 배치된 병력을 뺀 것이 아니고 예비연대 일부를 빼 휴전선 공백이 있지 않다」고 했는데 증인의 견해를 말하라.
『본인의 의견은 다르다. 서부전선은 전장으로 변하면 적의 주공지역이 된다. 9사단을 다 포함해도 넉넉하지 않다. 후방에서 추가 투입 돼야 할 상황이 된다. 일부 병력이 빠져 나와도 든든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김인곤 의원(공화) 신문
-증인은 김재규와 반 합작 또는 완전합작으로 사태를 전개시킨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가는데.
『참모총장이란 자리가 대통령이 시해됐다고 해서 바로 범인을 추적하는 자리는 아니다.』
-증인도 12·12를 쿠데타라 했는데 만약 주모자를 고발한다면 누구를 고발하겠는가.
『전두환 소장을 고발하겠다.』
◇박태권 의원(민주) 신문
-증인이 보안사령관으로 전두환씨를 추천한 이유는.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군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그때 진종채 보안사령관도 차 실장과 사이가 나빠 밀려났고 해서 차 실장의 영향을 덜 받고 대통령이 사랑하고 있는 전두환을 추천했다.』
◇이해찬 의원(평민) 신문
-계엄책임자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나.
『포고령위반자에 대한 법적 조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12·12사태당시 9사단이 미 작전통제권의 지휘를 받지 않고 움직였으며 이후 14일 통제권을 이양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몰랐다.』
-지금도 국민은 군부쿠데타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하는데.
『이미 과거의 잘못을 알고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군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길홍 의원(민정) 신문
-증인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증인의 기회주의적 행동 때문이다. 시해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왜 국방장관 등에게 보고하지 않았나.
『내가 시해 현장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은 나도 나중에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알았다. 내가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억측이다.』
◇김광일 의원(민주) 신문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 권력은 중앙정보부·보안사·경호실·경찰 등의 뒷받침으로 유지됐었는데 10·26이 일어나 합수부가 생기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 아닌가.『정보·보안·수사업무의 모든 통제권을 전씨가 갖게된 것은 사실이다.』
-군법회의 판결 전에 보안사에서 이학봉이 심부름꾼으로 찾아와 「김재규 사건에서 눈치를 보았다」 고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는가.
『7년을 선고 할테니 놀라지 말라며 금방 복권조치까지 다해주겠다고 했다.』

<심재철씨 증언="전" 서울대 총 학생회장>
◇조홍규 의원(평민) 신문
-80년 3월 서울대 총 학생회장으로 선출될 당시 공약은.
『학원민주화가 가장 주된 것이었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는 어떤 것이었나.
『5월2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광장에 1만2천 명이 참석한 집회와 5월15일 서울역 집회가 가장 컸다.』
-5월15일 이대 회합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5월16일 오후 59개 학교 학생대표들이 모여 내가 상황을 보고했고, 사회는 이홍동 서울대학생회간부, 서강대학생회장 등이 돌아가며 봤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전두환·신현확을 물리치는 방법을 논의하며 좀더 기다리자는 주장과 지금 당장 나가자는 주장 등 의견이 백출했다.
그날 집약된 의견은 전두환·신현확이 20일까지 물러나고 20일까지 계엄을 해제하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것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에 연루됐는데 김대중씨와는 어떤 연관을 가졌는가.
『법정에 서기까지는 어떤 연관도 없었다.』

<정기용씨 증언="당시" 군 검찰관>
◇신경식 의원(민정) 신문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 과정에서의 직책은.
『육본 고등검찰부장 겸 보통 검사부장이었다. 김대중총재 수사를 직접 담당해 공소장까지 작성했다.
-김 총재는 지난달 18일 증언에서 대법원 확정판결 내용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조작한 사실 없다. 김 총재는 피의자 시문 조서를 다 쓰면 돋보기로 다 읽어보고 확인한 뒤 서명 날인했다. 전혀 조작된 바 없다.
-공소장에는 김 총재가 학원 소요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김상현씨를 통해 정동년 씨에게 5백만 원을 주었다고 되어있으나 모두 부인하고 있다.
『김 총재와 김상현씨는 검찰수사단계에서 순순히 시인해 의심 없이 공소장에 적어 넣은 것이다. 정동년 씨도 담당 검찰관이 광주에 내려갔다 온 뒤 시인하더라고 했다.』 <5면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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