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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 처음 들은 남북 적십자 회담
남북 적십자 예비 회담이 판문점에서 처음 열린 소식을 안 것은 미국에 있을 때였다.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말소리가 내 나라에 대한 향수로 잔뜩 엷어져있던 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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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특파원이 본 남북적 서울 회담
서울에 온 외국 특파원의 눈에 비친 남북 회담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서울엔 현재 2백여명의 외국 특파원들이 와 있다. 그들은 한적 대표들이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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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만에 다시 함께 한 식사|서울과 평양 가깝게 느껴져"
북적 대표단 일행이 12일 밤 9시부터 「타워·라마」 (귀빈 식당) 에서 이범석 수석 대표가 베푼 비공식 만찬회에 참석한 동안 북한 기자 20명과 수행원 20명은 「타워·호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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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삼각산 아닙니까"
『여러분의 편안한 여행을 돕기 위한 안내원입니다. 서울까지는 약1시간30분 걸립니다.』북한 기자단을 태운 서울 영5-7532호 유신 고속관광 「버스」가 12일 상오10시47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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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대표단 54명 입경
제2차 남북 적십자 본 회담에 참석할 북한 적십자 대표 7명, 자문위원 7명, 수행원 20명, 기자 20명 등 일행 54명이 12일 상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남북 분단 27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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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대표단, 내일 서울에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적 본 회담에 참가할 북적 대표단 및 기자단 일행 54명이 12일 판문점을 통과,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유의 땅 서울에 온다. 이들은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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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영접 채비-한적, 남북적 2차 본 회담 맞아
12일 아침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적 제2차 본 회담에 참석할 북적 대표단 일행을 맞을 준비는 모두 끝났다. 분단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유의 땅에 발을 들여놓을 「북의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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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대표단 12일 서울에
대한 적십자사는 오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 적십자 회담에 참가할 북적 대표단 일행은 12일 판문점을 통과, 서울에 온다고 9일 발표했다. 한적은 이들 북적 대표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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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남북한 동등 수교 주장
【동경=박동순특파원】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7일 평양에 체재중인 일본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남한과 만 외교 관계를 맺어 경제 원조를 하고있는 것은 남북 통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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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 대표단 북한방문일지
◇29일 ▲상오10시3분 한적 대표단「돌아오지 않는 다리」넘어 북한에 첫발. ▲낮12시30분 사리원 도착. 사리원 여관에서 휴식. ▲하오2시25분 평양도착. 문수리 초대소에 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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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건너 돌아와|한적 대표일행 4박5일 일정 마치고
【판문점=대한민국 신문·통신취재단】『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남북적십자 본 회담 한적 측 대표 등 일행54명은 2일 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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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북 2박13일의 일정 (29잎∼31일 상오까지)
▲29일 상오 10시30분 대표단 일행 판문점 출발 ▲10시50분 개성통과 ▲11시4분 금천 도착 ▲낮 12시30분 봉산통과 사리원 도착 여관에서 휴식, 1시20분 출발 ▲하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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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다 가방 들고 출근
평양시민들은 아침에 시차제 출근이어서 혼잡한 교통「러쉬」는 없다고 숙소안내원이 말했다. 출근수단은 무궤도 전차·「버스」등이 대부분. 남자들은 많은 사람들이「브리프·케이스」같은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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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말해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본사 이광표 특파원, 27년만에 본 북의 산하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 공동취재단】29일 하오 2시25분 단절 27년만에 평양 땅을 밟았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2백21km. 자동차로 3시간55분이 걸리는 지척-. 4반세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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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대표단 평양도착|29일 하오2시25분에|판문점서 자동차로 3시간 55분 걸려
우리대표단일행은 이날 상오9시30분 판문점에서 김태회북적회담대표의 영접속에 북한측 건물인 판문각으로 안내되어 잠식 휴식한 후 상오 10시 30분 북적이 마련한 「벤츤」220「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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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단 숙소는 강변 「초대소」
29일 본기자는 북적이 제공한 23호 승용차를 타고 판문점「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과, 하오2시25분 평양에 도착, 숙소로 정해진 대동강변 초대소의 3호동 2층9호실에 안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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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통일에 접근하는 길
○…박정희대통령은 29일 상오 2·4분기 심사분석 보고회의에 참석하려던 예정을 취소하고 한국적십자사대표단이 판문점을 넘어 이북으로 가는 광경을 이후낙 정보부장, 김정렴 비서실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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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 대표단 54명 내일 평양 향발
8월 29일 07:00 대표단 한적 본사 집합 07:15 수석대표 기자회견 07:30 대표단 출발 09:00 판문점 도착 09:30 l0:00 판문점 통과 (장소는 중립국감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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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담 절차 합의내용
1972년8월11일 개최된 제25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쌍방은 남북적십자 본회담 기타 진행절차 및 본회담 개최일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쌍방은 남북공동성명 정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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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두개의 자유당|전시하의 정치파동(8)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예서 세칭 원외자유당과 원내자유당이란 같은 이름의 2개의 정당이 같은 날 발대식을 가졌다. 국민회를 모체로 노총 농총 부인회 등을 조직기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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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개헌시비(1)
1952년 이른봄부터 무더운 여름에 걸쳐 1백50「마일」전선에서는 판문점휴전회담은 아랑곳없이 가열한 고지쟁탈전이 계속 됐는데 이에 못지 않게 임시수도 부산에서도 또 하나의 치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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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회담 대표단 구성에 합의
【판문점=임시취재반】14일 상오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2차 적십자예비회담에서 남-북한 양측은 본 회담대표단의 수석대표(단장)를 쌍방적십자의 책임자 또는 부 책임자로 선정할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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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에 몰려 화재만발|「7.4 물결」이틀째
7·4발표의 충격은 시간이 지남에도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발표가 있은 4일은 밤늦게까지 거리·다방·가정에서 온통『평양에 갔다 왔다』는 놀라운 이야기에 쏠렸고, 하루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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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성명 발표-이후락 정보부장 5월2일 평양서 김일성과 회담|무력행위 포기, 평화통일 촉진합의
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