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이국에서 처음 들은 남북 적십자 회담

    남북 적십자 예비 회담이 판문점에서 처음 열린 소식을 안 것은 미국에 있을 때였다.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말소리가 내 나라에 대한 향수로 잔뜩 엷어져있던 귀를

    중앙일보

    1972.09.16 00:00

  • 외국 특파원이 본 남북적 서울 회담

    서울에 온 외국 특파원의 눈에 비친 남북 회담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서울엔 현재 2백여명의 외국 특파원들이 와 있다. 그들은 한적 대표들이 평양

    중앙일보

    1972.09.14 00:00

  • "보름만에 다시 함께 한 식사|서울과 평양 가깝게 느껴져"

    북적 대표단 일행이 12일 밤 9시부터 「타워·라마」 (귀빈 식당) 에서 이범석 수석 대표가 베푼 비공식 만찬회에 참석한 동안 북한 기자 20명과 수행원 20명은 「타워·호텔」 1

    중앙일보

    1972.09.13 00:00

  • "저것이 삼각산 아닙니까"

    『여러분의 편안한 여행을 돕기 위한 안내원입니다. 서울까지는 약1시간30분 걸립니다.』북한 기자단을 태운 서울 영5-7532호 유신 고속관광 「버스」가 12일 상오10시47분 서울

    중앙일보

    1972.09.12 00:00

  • 북적 대표단 54명 입경

    제2차 남북 적십자 본 회담에 참석할 북한 적십자 대표 7명, 자문위원 7명, 수행원 20명, 기자 20명 등 일행 54명이 12일 상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남북 분단 27년만

    중앙일보

    1972.09.12 00:00

  • 북적 대표단, 내일 서울에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적 본 회담에 참가할 북적 대표단 및 기자단 일행 54명이 12일 판문점을 통과,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유의 땅 서울에 온다. 이들은 서울에서

    중앙일보

    1972.09.11 00:00

  • 차분한 영접 채비-한적, 남북적 2차 본 회담 맞아

    12일 아침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적 제2차 본 회담에 참석할 북적 대표단 일행을 맞을 준비는 모두 끝났다. 분단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유의 땅에 발을 들여놓을 「북의 사람」을

    중앙일보

    1972.09.11 00:00

  • 북적 대표단 12일 서울에

    대한 적십자사는 오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 적십자 회담에 참가할 북적 대표단 일행은 12일 판문점을 통과, 서울에 온다고 9일 발표했다. 한적은 이들 북적 대표단과

    중앙일보

    1972.09.09 00:00

  • 일의 남북한 동등 수교 주장

    【동경=박동순특파원】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7일 평양에 체재중인 일본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남한과 만 외교 관계를 맺어 경제 원조를 하고있는 것은 남북 통일을

    중앙일보

    1972.09.08 00:00

  • 한적 대표단 북한방문일지

    ◇29일 ▲상오10시3분 한적 대표단「돌아오지 않는 다리」넘어 북한에 첫발. ▲낮12시30분 사리원 도착. 사리원 여관에서 휴식. ▲하오2시25분 평양도착. 문수리 초대소에 여장을

    중앙일보

    1972.09.02 00:00

  • 「돌아오지 않는 다리」건너 돌아와|한적 대표일행 4박5일 일정 마치고

    【판문점=대한민국 신문·통신취재단】『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남북적십자 본 회담 한적 측 대표 등 일행54명은 2일 상오

    중앙일보

    1972.09.02 00:00

  • 체북 2박13일의 일정 (29잎∼31일 상오까지)

    ▲29일 상오 10시30분 대표단 일행 판문점 출발 ▲10시50분 개성통과 ▲11시4분 금천 도착 ▲낮 12시30분 봉산통과 사리원 도착 여관에서 휴식, 1시20분 출발 ▲하오 1

    중앙일보

    1972.08.31 00:00

  • 남녀가 다 가방 들고 출근

    평양시민들은 아침에 시차제 출근이어서 혼잡한 교통「러쉬」는 없다고 숙소안내원이 말했다. 출근수단은 무궤도 전차·「버스」등이 대부분. 남자들은 많은 사람들이「브리프·케이스」같은 손가

    중앙일보

    1972.08.31 00:00

  • 「단절」을 말해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본사 이광표 특파원, 27년만에 본 북의 산하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 공동취재단】29일 하오 2시25분 단절 27년만에 평양 땅을 밟았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2백21km. 자동차로 3시간55분이 걸리는 지척-. 4반세기동

    중앙일보

    1972.08.30 00:00

  • 한적대표단 평양도착|29일 하오2시25분에|판문점서 자동차로 3시간 55분 걸려

    우리대표단일행은 이날 상오9시30분 판문점에서 김태회북적회담대표의 영접속에 북한측 건물인 판문각으로 안내되어 잠식 휴식한 후 상오 10시 30분 북적이 마련한 「벤츤」220「벌버」

    중앙일보

    1972.08.29 00:00

  • 대표단 숙소는 강변 「초대소」

    29일 본기자는 북적이 제공한 23호 승용차를 타고 판문점「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과, 하오2시25분 평양에 도착, 숙소로 정해진 대동강변 초대소의 3호동 2층9호실에 안내되어

    중앙일보

    1972.08.29 00:00

  • 문화적 통일에 접근하는 길

    ○…박정희대통령은 29일 상오 2·4분기 심사분석 보고회의에 참석하려던 예정을 취소하고 한국적십자사대표단이 판문점을 넘어 이북으로 가는 광경을 이후낙 정보부장, 김정렴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1972.08.29 00:00

  • 한적 대표단 54명 내일 평양 향발

    8월 29일 07:00 대표단 한적 본사 집합 07:15 수석대표 기자회견 07:30 대표단 출발 09:00 판문점 도착 09:30 l0:00 판문점 통과 (장소는 중립국감독위

    중앙일보

    1972.08.28 00:00

  • 본회담 절차 합의내용

    1972년8월11일 개최된 제25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쌍방은 남북적십자 본회담 기타 진행절차 및 본회담 개최일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쌍방은 남북공동성명 정신에

    중앙일보

    1972.08.11 00:00

  • (359)|두개의 자유당|전시하의 정치파동(8)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예서 세칭 원외자유당과 원내자유당이란 같은 이름의 2개의 정당이 같은 날 발대식을 가졌다. 국민회를 모체로 노총 농총 부인회 등을 조직기반으로

    중앙일보

    1972.08.07 00:00

  • (352)개헌시비(1)

    1952년 이른봄부터 무더운 여름에 걸쳐 1백50「마일」전선에서는 판문점휴전회담은 아랑곳없이 가열한 고지쟁탈전이 계속 됐는데 이에 못지 않게 임시수도 부산에서도 또 하나의 치열한

    중앙일보

    1972.07.19 00:00

  • 본 회담 대표단 구성에 합의

    【판문점=임시취재반】14일 상오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2차 적십자예비회담에서 남-북한 양측은 본 회담대표단의 수석대표(단장)를 쌍방적십자의 책임자 또는 부 책임자로 선정할 것에

    중앙일보

    1972.07.14 00:00

  • 재방송에 몰려 화재만발|「7.4 물결」이틀째

    7·4발표의 충격은 시간이 지남에도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발표가 있은 4일은 밤늦게까지 거리·다방·가정에서 온통『평양에 갔다 왔다』는 놀라운 이야기에 쏠렸고, 하루가 지

    중앙일보

    1972.07.05 00:00

  • 남북공동성명 발표-이후락 정보부장 5월2일 평양서 김일성과 회담|무력행위 포기, 평화통일 촉진합의

    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

    중앙일보

    1972.07.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