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의 「테너」가수 『엔리코·카루소』탄생 백주년
지난달25일은 「세기의 황금목소리」「엔리코·카루소」가 탄생한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고향 「나폴리」에 있는 「산·카를로·오페라」극장에서는 저명한 현역가수들로 구성된
-
해외 화제「디오르」『요리법』 출간
"훌륭한 요리는 신과 인간의 작품" 「네이비·블루」 의상·하의와 붉은「드레스」가 진열되어 있는「크리스티앙·디오르」의 의상점에는 지금은 고인인 「디오르」의 숨은 요리법을 수록한 최근
-
(699)제 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7)배성회(배풍회)
김사국이 주도한 서울청년회이외에 국내에는 일본유학생들로 구성된 배성회(배풍회)가 또 하나의 유력한 청년단체로 등장했다. 북풍회는 전회에서 잠깐 얘기한 것처럼 일본 유학생출신인 김야
-
(7)
1923년9월 나는「루더·크레스먼」과 결혼식을 올렸다. 식은 내가 11살 때 세례를 받았던 「펜실베이니어」「버킹검」의 작은 성공회에서 했다. 내 친구들과 친척들은 멀리까지 찾아와
-
(612)제28화 북간도(32)
신흥중학교는 많은 지사·독립군 장병을 길러냈으나 1920년8월에 없어졌다. 1910년10월에 신민회는 양기탁의 주재로 회의를 갖고 국권회복을 논한 끝에 『조선국내서는 총독부에 항
-
유엔외교…그 표면
우리 나라의 대 유엔외교는 지난 48년 유엔에서 한국이 승인을 받기 전부터 시작됐다. 「유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50년대까지 한국은「유엔」문제로 고민을 하지 않아도
-
남·북 생활의 단층을 깊었다|직접 대했던 이들이 말하는 북의 사람
『북의 일행』54명이 서울에 머무른 지 4박5일-. 먹고 자고 보고 말하면서 그들이 남긴 일거일동은 분단 27년이 빚은 남북생활의 거리를 역력히 드러낸 것이었다. 숙소에서, 나들이
-
긴장 풀고…서울 나들이|북적 대표들 입경 4일째
서울에 머무른지 4일째를 맞은 북적 대표단 일행은 15일 상오 10시20분 예정보다 늦게 서울 시내 관광에 나서 우리 생활을 직접 살피고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합의 문서가 극적으
-
의식주|본사 이광균특파원 평양방문기|옷매 화장은 50년대 모습 그대로|고급연회 때면 판치는 인류요리|그래도 평양냉면의 국물은 예전의 맛|남남북녀는 벌써 옛 말…가냘픈 여자는 안보여
1백여 시간을 북한에 머물렀지만 기자들이 접촉해 볼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북한생활의 참 모습을 충분히 알아보려 애를 썼지만 일반주택은 한곳도 방문할 기회를 주지
-
강량욱은 준비한 원고 읽어
조선민주당 강량욱 중앙위원장이 한적 대표단을 위해 베푼 오찬회의「메뉴」에는 설기떡·계피 떡·메추리알과 메추리구이 요리가 나왔다. 문수리 초대소 5호각의 식당에서의 오찬회에서 북적
-
여류문학인회 신임회장 임옥인 여사
「여류문학인회」는 제4대 회장으로 임옥인 여사(건대국문과 교수)를 선출했다. 1939년 「문장」지에 『봉선화』로 「데뷔」한 임 여사는 30여년의 작품활동을 통해 창작과 교단생활을
-
(353)발명학회(7)|목돈상
과학「데이」실행회는 제1회 행사만을 마치고 곧 해산했다. 제2회 때부터는 거창한 규모로 발족한 과학지식 보급회가 모든 행사를 전담하게 됐다. 특히 중단됐던『과학 조선』을 2월부터
-
미국대통령들은 미식가-백악관 전 요리 장이 말하는 그들의 식성
미국인들은 간소한 음식을 즐기는 자기네들의 식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백악관 전 요리 장들이 남겨 놓은 「메뉴」들을 잠깐 훑어보면 대다수 미국대통령들이 미식가 적인 취향을 지니고 있
-
일 재계의|저자세 무름 쓴 선진 다툼
【동경=조동오 특파원】일본산업계가 중공과 그와 동조하는 북괴의 정치적 역학 앞에 백기를 들고 즐겨 쓰던 정경분리 원칙의 근간이 무너졌다. 13일 영야중웅 신 일본제철 회장, 본천
-
접전 「피날레」 중국대표권|토의에서 표결까지 유엔외교 하일라이트
지난 18일 상오10시반(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유엔」의 「중국대표권 문제토의」가 「알바니아」안 통과로 나타났다. 그 동안 「중공초청」 인정이란 대전제 아래 「국부잔류」냐 「국부추
-
아폴로 15호 떠나던 날
【케이프케네디26일 UPI동양】미 3인승 우주선 「아폴로」15호가 26일 예정대로 달을 향히 발사되는 광경은 「케이프케네디」기지 남쪽 해발41㎞에 운집한 약 1백만명의 우주 「펜」
-
(99)양식 반세기(제7화)
널리 알려진 대정객이나 외국에 다녀온 명사들이 주로 양식 「테이블」을 차지했던 때이지만 언론인 김을한씨는 1920년대부터 「레스토랑」에 나와 늘 낮을 익힌 얼굴이다. 김씨는 약관
-
제7화 양식 반세기(5)
좌옹 윤치호 선생댁에서 소문난 양식이 처음으로 대중에 흘러 들어간 것이 YMCA「그릴」이었다. 당시 일본 문화가 마구 쏟아져 나와 이른바 혼마찌라던 현 충무로 일대엔 첫 양식집
-
(97)|양식반세기(4)-황실의 서양풍
서양 오리에 맛들인 고종은 궁중의 양식을 맡을 식부관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국유학생 윤기익을 앉히고 서양요리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일류 쿠크를 초빙하고 집기일식을 사들이게 했다. 그리
-
(96)제7화 양식반세기(3)
20세기 초반에 우리 나라에도 서양요릿집이 생겨났지만 이는 한일합방이후 물밀듯이 밀어닥친 일본문물에 얹혀 들어온 산물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 나라 사람으로 누가 제일먼저 양요리를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83)|창군전후(2)|이경석
내가 일본육사 제45기생으로 졸업한 것은 1933년.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미국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영화에서 본 것이 육사를 지망한 동기였다. 당시에는 교육 총감부라는데
-
(79) | 동양극장 시절 (18)|박진
연전에 신문학 60년이니, 신연극 60년이니해서 제각기 조용한 잔치를 치른 일이 있다. 즉 신문화라는 것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얻은 것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신무
-
160여 가지에 사진까지 넣어
오랫동안 요리 연구가로 활약해 오던 한정혜씨가 첫 요리책을 냈다. 재료별로 육류·어류·야채로 나눈 다음 과자·주식·주류 등을 따로 취급하고 있어 1백60여가지의 다양한 요리를 일일
-
(148)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전 일본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이 본 영친왕)이왕 전하 도전정순 이왕 전하는 명치30년(1897) 10월20일 어탄생, 이왕 조제 26대 이태 왕의 책7남자, 명치38년 왕세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