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격전지 오산이 보고싶다"

    6·25때 미지상군으로는 처음으로 북괴군과 오산지역에서 접전, 공을 세운 「스미드」특공대의 대장이었던「찰즈·B·스미드」예비역육군준장(59·당시 중령)이 2일 하오8시 KAL기편으로

    중앙일보

    1975.07.03 00:00

  • 한·미 육참 총장 회담

    17일 내한한 미 육군 참모 총장 「프레드릭·C·웨이언드」 대장과 이세호 육군 참모 총장은 17일 하오 약 40분간 회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웨이언드」 장군은

    중앙일보

    1975.06.18 00:00

  • 당시의 격전지 보고싶다

    6·25당시 한국전에 참전했다 「한국 재방문」계획에 따라 15일 내한한 미국·벨기에 참전용사들은 내한 2일째인 16일 서울관광을 하면서 마치 고향을 다시 찾은 감회에 젖었다. 이들

    중앙일보

    1975.06.17 00:00

  • "격전의 그 땅이라고 믿어지지 않는군요"

    『젊은 시절,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의 터전에 다시 되돌아 와보니 감회가 깊군요. 지금은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믿어지지 않는군요』―. 6·25 한국동란당시 유엔참전 16

    중앙일보

    1975.06.16 00:00

  • 항공기동여단 창설 도와

    【뉴요크11일 AP합동】월남전참전자인 전 미 육군 항공대장교들을 포함한 약 1천5백명의 미국인들이 지난 l8개월간「이란」에 파견되어「이란」항공기 동 여단의 창설을 돕고 있다고 11

    중앙일보

    1975.02.12 00:00

  • (1)|일곱 차례 회담의 발자취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아이젠하워」·「존슨」에 이어 오는22일 세 번째 방한하는「포드」대통령은 11번째의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11차례의 회담 가운데 이승만·「아이젠하워」, 허

    중앙일보

    1974.11.16 00:00

  • 역사의 뒤안

    「오오쓰(대진) 사건」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생소하지만, 일본의 근세사에선 극히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일명 「호남 사건」이라고도 한다. 1891년 4월 「러시아」의 황태자

    중앙일보

    1974.08.22 00:00

  • 24년만에 찾아낸 아버지묘

    『아버님! 이제야 찻아뵙습니다.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6·25 24년만에 아버지의 묘를 찾아낸 김흥주씨(28·무직·서울관악구 신림1동410의22)는 가슴이메어 말끝을 맺지

    중앙일보

    1974.06.25 00:00

  • 국무위원 팀 정구에 우승

    김종필 국무총리는 일요일인 16일 중앙청「코트」에서 국무위원 및 한·미군장성「테니스」경기를 주최. 경기엔 국무위원·국방부·합참·육군·해군·공군·「유엔」군 사령부 등 7개「팀」에서

    중앙일보

    1974.06.17 00:00

  • 기구타고 대서양 횡단 모험

    한국전 참전 용사이기도한 미육군 예비역대령「토머스·개지」2세 (49)는 사상 최초로 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13일 하오7시29분「해리스버그」국제공항을 출

    중앙일보

    1974.02.20 00:00

  • 모로코·튀니지 아랍 전선 가담

    【라바트 (모로코) 10일 AP합동】3개 대대 약 1천6백명으로 구성된 두 번째 「모로코」 육군 여단이 10일 아침 일찍 「시나이」 전선의 「이집트」군과 합류하기 위해 항공편으로「

    중앙일보

    1973.10.11 00:00

  • 해병대 사령부 해체

    국무회의는 14일 해병대를 해군에 흡수, 통합시키고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국군조직법 중 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1949년 4월 경남진해 덕산

    중앙일보

    1973.09.15 00:00

  • 제15대 유엔군사령관 「스틸웰」대장

    프로필 1952년부터 53년까지 미3보병사단 15연대장으로 한국전에서 무혼을 세운 「스틸웰」대장(56)이 미육사를 졸업한것은 1938년. 임관당시 병과는 공병이었다. 제2차 세계대

    중앙일보

    1973.07.31 00:00

  • 23년만에 감격적인 재회|한국전 참전 마틴씨와 성영주씨

    한국전쟁 때 미 육군중사로 참전했던 「로버트·A·마틴」씨(53·「앨라배마」주 「헌츠빌」시)가 51년 당시 의정부의 부대에 「하우스보이」로 데리고 있던 성영주씨(37·미8군 종업원·

    중앙일보

    1973.07.21 00:00

  • (483)|인도군의 포로 관리 (8)|설득 설전 (4)

    한국군 설득 장교단은 친공 포로들을 설득하는데 있어 「상대방과 자기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는 손자병법을 적절히 원용했다. 즉 국군 출신 친공

    중앙일보

    1973.07.13 00:00

  • (479) 중립지대안의 수용소(4)|인도군의 포로관리(4)

    공산측이 인도군에 인계한 송환 거부 「유엔」군 출신 친공포로는 한국군 3백35명, 미군 33명, 영군 1명의 도합 3백69명으로 귀환 불원 반공포로의 60분의 1도 안 되는 적은

    중앙일보

    1973.07.04 00:00

  • 원주 심기윤옹 50만원 모아「마지막 사업」계획|64년에 세운 현충탑주위에

    세아들을 나라에 바친 뒤로 원호사업에 몰두, 원주시 대장동에 사재로 현충탑을 세운 심기연옹(77·원주시 학성2동 311의9)이 정부로부터 지급 받은 아들들의 원호금을 한푼도 쓰지

    중앙일보

    1973.06.06 00:00

  • (452)|휴전회담(후반부)(4)|이 대통령의 항거(1)

    북진통일이 필생의 염원이던 이승만대통령으로서는 6·25 이전상태로의 복귀를 뜻하는 휴전은 처음부터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수차 「워싱턴」에 휴전반대를 호소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중앙일보

    1973.04.30 00:00

  • (417)지원작전(3)|군수보급(3)

    부산항에 산적된 미 군수물자들은 다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신속히 전방으로 수송 됐다. 한국군에 대한 수송·보급은 주로 우리 육본 군수 국과 해군수송선들이 담당, 추진했다. 인사(G

    중앙일보

    1973.01.22 00:00

  • (2)확 전의 불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본사특약】미국과 월남이 단 하나의 공식조약을 체결한 것은 「트루먼」집권 시였다. 이것은 한국전의 영향으로「아시아」 일대의 방위 망을 재정비할 때 체결된 조약

    중앙일보

    1973.01.19 00:00

  • (414)|그리스원정군 대대

    1개대대의 육군과 1개수송중대의 공군을 참전시킨「그리스」는 한국전이 일어나기 1년전인 49년까지 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내란을 겪었다. 이 내란은 45년부터 시작되어 5년간이나 계

    중앙일보

    1973.01.15 00:00

  • (413)|우방 참전 부대 (14)|콜롬비아·캐나다 군

    중남미의 「콜롬비아」와 북미의 「캐나다」는 유엔 참전 16개국 중 가장 늦게 군대를 보내왔지만 약 2년 동안 한국에서 계속 싸웠다. 「캐나다」는 공군과 해군을 50년7월30일부터

    중앙일보

    1973.01.10 00:00

  • 육군 동계 대기동훈련

    혹한기 적의 기습공격을 막기 위한 육군 동계 전선 대 기동훈련이 연초부터 중동부전선 일대에서 전개됐다. ○개전무단과 공수·유격 등 비정규특수전부대가 참전한 이 기동훈련은 육군이 계

    중앙일보

    1973.01.09 00:00

  • (411)|우방 참전부대(12)|호주·「뉴질랜드」군

    육·해·공 3군을 모두 참전시킨 호주와 육·해군만 보낸 뉴질랜드는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며 한국전 3년을 치렀다. 그것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관계처럼 양국도 당시 외교·군사·경제면

    중앙일보

    1973.01.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