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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40) 제80화 한일회담(239) 마무리 전략손질

    나는 부임한지 채 1개월도 못된 11월15일밤 귀국했다. 박대통령에게 우선 일본국내정세의 변동에 관해 설명하고 또 앞으로 있을 한일회담에 관한 우리측 전략을 최종적으로 손질하기 위

    중앙일보

    1984.06.15 00:00

  • (4039) 제80화 한일회담-요정외교

    내가 주일대사에 부임해 한일회담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에 동분서주하던 때 일본정계에는 예상외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께다」수상은 자민당총재로 3선한지 불과 2개월여 만인 9월9

    중앙일보

    1984.06.14 00:00

  • (4038) 제80화 한일회담-일괄타결방식 지양

    나는 주일대사 부임후 상당기간 한일회담의 재개와 그 성공적 결실을 위해 일본 조야인사들을 상대로 탐색적 예방을 계속했다. 일본측 수석대표「스기」(삼도조)씨와의 면담에 이어 차석대표

    중앙일보

    1984.06.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80화 한일회담(236)

    나는 10월23일「에드윈·라이샤워」 주일미대사를 예방, 부임인사를 하고 한일현안 타결에 측면지원을 요청했다. 나는 『귀하가 한일현안을 타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말할 수없이 귀중한

    중앙일보

    1984.06.11 00:00

  • 제80화 한일회담|「시이나」외상과의 상견례

    나는 10윌20일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노드웨스트편으로 동경의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주일대표부의 방희공사·일본외무성의전관계자·민단간부들의 마중을 받으며 귀빈실로 나오니 사진기

    중앙일보

    1984.06.09 00:00

  • (4035)-제80화 한일회담(234) 속죄사절 파한교섭

    나는 10윌20일의 주일대사 부임을 앞둔 10여일간 한일회담 전략협의를 위해 열린 박대통령 주재의 청와대 정부·여당 연석회의를 비롯, 정일권총리주재의 관계 부처장관회의등 많은 회의

    중앙일보

    1984.06.08 00:00

  • (4033) 제80화 한일회담(232)-7인 외교자문위

    박대통령은 정권의 운명을 걸고 한일회담 타결시한을 65년6월까지로 못박았다. 6·3사태는 한일회담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충분히 정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한 것이

    중앙일보

    1984.06.06 00:00

  • (4032) 제80화 한일회담(231) 한미정부 공동보조

    박정희대용령등 군인출신 정치인들은 한일관계에 가로놓인 우리국민의 대일감정이라는 심연의 깊이와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 6·3사태라는 크나큰 좌절을 겪어야만했다. 국외자

    중앙일보

    1984.06.05 00:00

  • (4031)-제80화 한일회담(230)|미국의 개입

    나는 10월17일 정식으로 주일대사신임장을 받고 20일하오 동경으로 부임했다. 대사기용발표후 동경부임때까지의 보름간 그야말로 분망한 나날이었다. 우선 외무부관계자들로부터 한일회담의

    중앙일보

    1984.06.04 00:00

  • (4029)제80화 한일?승(228)일본의 반응

    정부는 64년10월6일 밤 나의 주일대사임명을 비롯해 주미대사에 김현철 전 내각수반(차정 때)등 8개국대사의 인사단행을 발표했다. 이동원 장관은 뒷날 나의 주일대사기용과 관련해 이

    중앙일보

    1984.06.01 00:00

  • (4026)제80화 한일회담(225)이외무,면접시험 합격

    박대통령은 6개윌전까지만 해도 군정중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이동원주태대사에게서 국내 정치상항을 의식하지 않고 한일회담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찾았던 것 같다. 38세였음에도

    중앙일보

    1984.05.29 00:00

  • (4025) 제80화 한일회담

    6·3사태로 내각붕괴…정일권씨 새총리로 한일 양국은 64년7윌 다같이 외무장관을 바꿔 한일회담의 초기타결에 대한 양국 수뇌의 확고한 결의를 표시했다. 학생들과 야당측의 결사적인 대

    중앙일보

    1984.05.28 00:00

  • (4024)제80화 한일회담(223)|사또장관 면담

    나는 63년 11월 초순「야쓰기」씨의 안내로 동경의 호텔 오꾸라에서 「사또」북해도개발청장관을 만났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일본전통극인 가부끼 배우같은 느낌을 준 「사또」 씨는 굵직

    중앙일보

    1984.05.26 00:00

  • 제80화 한일회담(222)

    내가 박정희대통령의 지우를 얻게된 것은 64년 5월초였다. 박상길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이 찾는다는 전갈을 해와 자유당 정권이후 4년만에 처음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해 1월 대한

    중앙일보

    1984.05.25 00:00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4022) 제80화 한일회담(221) 박대통령의 뚝심

    6·3사태는 한·미·일 3국이 각각 자국정책상의 수요에 의해 묘한 조화를 이뤄가며 급속히 추진되던 한일관계정상화 움직임에 일단 제동을 건 사태였다. 한일문제에 관한한 미국의 강력한

    중앙일보

    1984.05.24 00:00

  • 제80화 한일회담(220)-공백기

    서울에서의 거센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김종필공화당의장이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자 일본에서는 『한일회담이 아무래도 또한차례 방학을 맞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즐은 한일

    중앙일보

    1984.05.23 00:00

  • (4020)제80화 한일회담(219)-굴욕외교반대시위

    64년 3월9일 야당진영은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위」를 결성했다. 윤보선·박순부·김도연·장택상씨등 정치인과 변영태·이인·장준하씨등 종교·사회단체대표들이 이 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은△

    중앙일보

    1984.05.22 00:00

  • (4019)전관수역 협상-제80화 한일회담(218)

    평화선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짓기 위한 한일 정상회담은 64년3월10일 도오꾜의 일본 농림성 회의실에서 열렸다. 평화선이 그어진뒤 13년동안 총1천3백해리에 걸쳐 완강하게 효력을

    중앙일보

    1984.05.21 00:00

  • (4018) 제80화 한일회담(217) 일본의 속셈

    한일문제는 63년 상반기 내내 부심하는 국내정세 때문에 소강상태를 유지할수 밖에 없었다. 박정희의장은 2·18성명을 통해 민정이양과 자신의 민정 불참을 선언했으나 3월16일에는「군

    중앙일보

    1984.05.19 00:00

  • (4017)한국 정정에 촉각-제80화 한일회담(216)

    김종필씨가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서 떠날 무렵 한일간에는 배의환-「스기」수석대표 사이에 예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초 김-「오오히라」회담에서 청구권문제를 매듭 지을 당시 두사

    중앙일보

    1984.05.18 00:00

  • (4016)|제80화 한일회담(215)-김부장 첫 번째 「외유」

    김-「오오히라」회담으로 한일관계는 넘어야 할 준령 하나를 넘어섰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준령을 넘고보니 발밑은 짙은 안개였다. 안개 저편에

    중앙일보

    1984.05.17 00:00

  • (4015)|제80화 한일회담-김-오오히라 메모탄생

    회담은 마침내 마지막 고비에 다다르고 있었다. 김부장은 △무상3억달러△대외협력기금(ODA)2억달러△민간산업차관 1억달러+ α의 카드를 마지노선으로 밀고 나갔다.여기서 더이상 물러서

    중앙일보

    1984.05.16 00:00

  • (4014)제80화 한일회담-김부장의 끈기

    시종 눈을 감은채 부처처렴 앉아있기만하던 「오오히라」외상은 김부장이 자리를 차고 일어서자 다소 「미동」을 보였다. 「오오히라」외상은 김부장의 손을 잡는 시늉을 하면서 『그러지 말고

    중앙일보

    1984.05.15 00:00

  • (4013)|제80화 한일회담(212)-태평외상과 두 번째 대좌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으로 향한 바로 그날, 미국에서는 이른바「쿠바사태」가 터졌다. 쿠바를 핵미사일 기지화하려는 소련의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케네디」대통령은 해상봉쇄라는 비상

    중앙일보

    1984.05.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