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4)제80화 한일회담-김부장의 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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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종 눈을 감은채 부처처렴 앉아있기만하던 「오오히라」외상은 김부장이 자리를 차고 일어서자 다소 「미동」을 보였다. 「오오히라」외상은 김부장의 손을 잡는 시늉을 하면서 『그러지 말고 좀더 이야기해 봅시다』하며 붙들었다.
막상 일어나긴 했지만 그대로밖으로 뛰쳐나갈 생각까지는 없었던 김부장은 그의 만류에 못이긴체 도로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김부장은 『여태까지 2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었는데 코피 한잔 안주십니까』라고 짐짓 주인의 박대를 나무랐다.김부장의가벼운 타박을 받은 「오오히라」외상은 그제서야 표정없이 검은 엄굴에 한가닥 미소를 지으면서 『오, 하긴 그것부터 잘못된것 같군요』하고 말했다. 따뜻한 차한잔으로 방안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무렵 김부장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외상, 귀국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고사에 이련게 있지요. 왜 울지않는 새를 두고 한 얘기 말입니다. 「오다·노부나가」(직전신장)는 「울지 않으면 쥭여버리겠다」고 했다죠. 「도요또미·히데요시」(풍신수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울리고 말겠다」고 했고, 「도꾸가와·이에야슨(덕천가강)는 「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지요.
일본의 천하통일은 결국 「도꾸가와·이에야스」가 했지만 절더러 말하란다면 지금 한일관계는 「도요모미·히데요시」가 말한 「무슨 수서 써서라도울리고 말겠다」는 얘기가 맞습니다.양국관계는 이제 언제까지고 기다릴수는 없읍니다.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모두서를위해 유익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김부장의 얘기를 발없이듣고 있던 「오오히라」외상의 얼굴에는 가벼운 수긍의 빛이 보이는것 같았다. 이윽고 「오오히라」외상이 말문을 열었다.
▲「오오히라」=좋소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얘기한 8천만달러에 대해 김선생은 여태까지 김선생의 액수를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지 않았소.
▲김=외상께서 받을 용의만 있다면 한마디로 얘기하지요. 외상과 내가 둘이서 타결을 정심하고 어떤 비난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시라면 지금 이자리에서딱 부러진 숫자를 제시하겠소.
▲「오오히라」=그것 좋소. 어디 김선생의 숫자를 들어봅시다.
▲김=△무상3억달러 △대외협력기금(ODA) 3억달러 △민간경제협력(상업차관) 1억달려+ α. 이것이 우리 정부의 요구요.
김부장의 이 말이 끝나자 「오오히라」외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휘저었다. 『그건 도저히 안됩니다』그리고 뒷짐을 진채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방안을 봤다갔다하던 그는 잠시후 자리에 돌아와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듯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오오히라=무상 1억, 유상2억, 그리고 만간차관은 케이스바이 케이스로 해서 여기에다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매듭지읍시다.
이번에는 김부장이 벌떡 일어섰다.
▲김=내가 얘기한 숫자는 우리 정부의 최종 카드요.
▲「오오히라」=지금 우리는 협상을 하고 있는거요.협상에 불변이라는건 있을수 없는 법이요. 나는 내가 아까 한말에 내 자리를 걸었소.
▲김=무상 3억달러는 결코 움직일수 없소이다. 대외협력기금 2억달러-. 그건 좋습니다.우리가 양보하리다. 나머지 1억달러+α는 민간차관이니 얼마든지 얘기해도 괜찮은것 아니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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