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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4. 미주동창회 연설
미주동창회에서 연설하는 필자. 서울의대 동창회장을 하면서 나는 미국에서 열리는 미주동창회 모임엔 빠짐없이 참석했다. 4박5일간 열리는 이 행사에 매년 의대학장 등 10여 명의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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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3. 함춘회관
동창회관인 함춘회관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서울대 의대 동창회 회장단. 왼쪽부터 심영보,필자,박양실 부회장,박희백 회관건축추진위원장. 나는 서울의대 동창회장에 오른 뒤 번듯한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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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2. 동창회장
제1회 함춘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右)에게 상패를 전달하는 필자. 1995년 나는 서울대 의대 동창회장에 선출됐다. 서울대 의대 반세기 역사에 '첫 여성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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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9 '공단 길병원'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무료 진료하고 있는 남동길병원 의료진. '원진레이온' 사건은 1990년대 초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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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5. 백령도 6년6개월
백령도길병원에서 원격 화상시스템을 이용해 진료 중인 의료팀을 격려하고 있는 필자. 우리의 땅 백령도. 국내 최북단 낙도인 그 섬을 떠올리면 아직도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지금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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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4. 구월동시대 (하)
1995년 심장센터 개원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필자(왼쪽에서 넷째). 인천시 구월동에 자리한 길병원은 개원 6개월 만에 500병상이 모두 찼다. 증가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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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3. 구월동시대 (중)
인천시 구월동 길병원의 전산화시스템을 견학하러 온 탈북 의사 출신 김만철(오른쪽에서 둘째)씨를 안내하고 있는 필자.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길병원을 건립하면서 나는 '병원 첨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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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1. 철원길병원
철원길병원 기공식에 참석한 필자(오른쪽에서 둘째). 1984년 철원지역 땅굴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자격으로 견학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버스 옆 자리에 동석한 철원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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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0. 의료취약지 양평 (2)
1988년 길병원 산부인과 박지홍 과장(左)(작고)과 양평길병원을 둘러보고 있는 필자. 양평길병원을 개원하자 당시 큰 병원을 운영하던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선생, 판단 잘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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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9. 의료취약지 양평 (1)
양평길병원 개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필자. 1970.80년대 우리 정부는 의료취약지구 해소를 위해 대학병원 등에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자금을 지원, 부산.대전.구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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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8. 인천길병원
인천길병원 개원 기념식 때 모습. 왼쪽부터 이영호 전 인천시 의사회 회장, 필자, 손재식 전 경기도지사, 최진학 인천길병원 초대 원장. 1976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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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7. 토끼 위령제
일본에서 열린 신장학회에 참석한 필자(앞줄 오른쪽). 앞줄 왼쪽이 다케우치 교수 부부. 일본 유학 중 나를 이끌어준 은사는 니혼(日本)대 다케우치 다다시 교수였다. 그는 일본 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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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6. 마흔셋 유학생
필자는 일본 유학 때 시간이 나면 혼자 우에노공원을 찾곤 했다. 1975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나이 마흔셋의 만학(晩學),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공항에서 나는 해묵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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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5. 인생의 기로
일본 니혼대 연구실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필자(右). 의사가 된 뒤부터 환자 진료가 사실상 내 인생의 전부였다. 특히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6~7년 동안은 그야말로 '환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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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4. '친정엄마'
필자(左)는 길병원에서 회진 도중 1958년부터 3대째 진료를 받고 있다는 환자를 만났다. 병원은 생로병사가 담긴 삶의 축소판이다. 의사는 경각을 다투는 환자들 속에서 한평생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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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2. 따뜻한 진료
인천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네 쌍둥이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필자. 병원에 오면 환자들은 대부분 긴장한다.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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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1. 환자 진료 25시
바쁜 개업의 시절에 바깥 세상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문을 읽는 것이었다. 진료에 몰두하고 환자에게 헌신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나는 후학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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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0. 무의촌 진료
무료 진료와 이·미용 봉사를 마친 뒤 마을 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는 필자. 어느 날 인천 지역 미용사협회 간부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미용사협회 회원 중 특히 어려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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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9. 영종도 산모
무의촌 진료를 마치고 환자들에게 여성질환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필자. 의사라면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감 속에 나를 찾아온 환자가 많았지만, 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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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7. 정이 넘치는 병원
필자(右)가 이길여 산부인과 2층에서 밖을 내다보며 웃고 있다. 나는 휴일도 없이 365일 이른 아침부터 환자를 진료했다. 위급한 환자들이 워낙 많은 시절이다 보니 24시간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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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3. 환자를 위한 병원
1988년 길병원과 토마스 제퍼슨 의대의 자매결연 조인식에서 닥터 고넬라(左)와 함께 한 필자. 최근 선진 의료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해외 탐방에 나서는 의료기관들이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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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1.미국 수련의 시절
퀸즈 종합병원 수련의 시절 동료 의사들과 함께(왼쪽에서 둘째가 필자). 5년에 가까운 미국 생활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나는 메리 이머큘리트 병원에서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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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9. 미국 유학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날 김포공항에서 포즈를 취했다. 군산도립병원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련생활을 하면서 미국 유학에 대한 열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문제는 유학경비였다. 항공료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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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8. 참 봉사자 닥터 골든
‘퀘이커 의료봉사단’일원으로 참 봉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닥터 골든(左)과 필자. 전쟁이 끝나자 부산전시연합대는 문을 닫았고, 서울대도 서울로 옮겼다. 나는 학교 근처인 서울 혜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