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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이윤영 목사의 제헌의회 기도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48년 5월 31일, 역사적인 대한민국 제헌의회가 개원했다. 국회의장에 당선된 이승만이 회의를 진행하려고 의장석에 앉았다. 공식 식순과 관계없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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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발작증 더 심해졌다, 박정희 시대 종말 시작됐다 (65) 유료 전용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대통령의 정밀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징후는 여러 군데에서 드러났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생활의 균형을 잡게 한 건 육 여사였다. 그분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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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이제 좀 놓아주십시오” 박정희 “왜, 총리 하기 싫어?” (62) 유료 전용
1975년 12월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국무총리직을 사퇴했다. 4년6개월 전 총리에 취임한 뒤 쉴 새 없이 달려오다 보니 육체적으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이후락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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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각하, 제가 나세르입니까” 처음으로 박정희에 대들었다 (47) 유료 전용
1968년 5월 있었던 이른바 ‘국민복지회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세력인 6인방이 나를 무력화하기 위해 꾸민 음모였다. 김형욱을 앞세운 그들은 내가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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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대발 박정희 “잡아들여!”…‘항명’ 김성곤 콧수염 뽑혔다 (41) 유료 전용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한 민주공화당의 4인 체제(김성곤·백남억·길재호·김진만)는 기세가 등등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연임을 성공시킨 이들의 세력은 공고해 보였다. 하지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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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제헌유족회, 김진표 국회의장과 오찬
윤인구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회장 윤인구·사진)는 김진표 국회의장 초청으로 16일 국회 사랑재에서 오찬 간담회 및 총회를 연다. 국회의장이 제헌 유족을 초청해 단독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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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4차 산업혁명 Power Korea 대전 오찬 간담회, 여의도서 열려
아랫줄 왼쪽부터 딥엑스 윤치영 팀장, 한국동서발전 정필식 원장, 한국네트웍스 이상몽 대표, CJ올리브네트웍스 차인혁 대표, 한국언론인협회 성대석 회장,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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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 방관, 식산은행 방해 뚫고 50년 5월 국회 통과
1950년 6월 5일 국내 최초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재무장관인 최순주 의장(서 있는 사람) 오른쪽으로 구용서 한은 총재, 하상용·윤보선 위원, 왼쪽으로 장봉호·홍성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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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윤인구 아나운서, 전두환 손녀 결혼식 사회
KBS 윤인구 아나운서가 전두환 전 대통령 손녀 전수현씨 결혼식 사회를 맡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 아나운서는 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진행된 전씨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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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철기 장군’ 이범석, 부산 정치파동으로 권력에서 멀어지다
1950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정치인들. 앞줄 왼쪽부터 임영신 상공부 장관,윤치영 내무부 장관,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중앙포토] 1952년 5월 25일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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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입문 반 년 만에 좔좔10대 때 과거 보던 선비
고종 밀서 품고 미국 루스벨트 만나…대통령 된 뒤 영어 능통자를 관료로 돈암장 살 때 서정주 앞에서 부인 프란체스카에게 "나가!"호통 첫 부인 박승선, 이승만 투옥되자 덕수궁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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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家를 찾아서]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덕수 이씨家
명문가란 통상 한 집안에서 정치인·관료·학자·기업인 등이 다수 배출된 경우를 말한다.천안·아산에서 명문가로 일컬을 만한 집안을 소개해 본다. 조한필 기자 유해를 옮겨오지 못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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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충격 秘史’ ] 3선개헌 직전 ‘이만섭 폭탄발언’ 막후 ②
①에서 이어짐 제3공화국 시절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적을 만들면서 가장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을 물러나게 했던 이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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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골프이야기] "비거리 더 나는 영국볼 구하느라 애먹었어요"
1961년 5.16 군사혁명 후 우리나라에 겨우 하나 있는 서울컨트리클럽을 불도저로 밀어 갈아버리고, 콩밭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을 JP가 설득해 보존하게 된 이야기는 몇 주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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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현대사속독특한 인물평
방대한 역사 기록을 남긴 조선시대인들의 후손답지 않게 현대 한국인은 어느 틈인가 기록을 알뜰하게 남기거나 소중히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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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우리 서로 섬기며 살자 ③ '아세아방송' 개국
1970년대 초 제주에 아세아 방송을 세우면서 정관계로부터 받은 혜택은 요즘이라면 틀림없이 청문회감이다. 부지 구입을 위해 답사를 할 때는 당시 공군참모총장이던 옥만호 장군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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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책꽂이] '괴짜 총리…' 外
◇ 괴짜 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오가타 구니히코 지음, 윤기 옮김, 예지, 9천8백원) 〓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왜곡 교과서 파동 등으로 뉴스의 중심 인물이 된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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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책꽂이] '괴짜 총리…' 外
◇ 괴짜 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오가타 구니히코 지음, 윤기 옮김, 예지, 9천8백원)〓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왜곡 교과서 파동 등으로 뉴스의 중심 인물이 된 일본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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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32)
32. 林炳稷대사의 부탁 나는 1952년 켄트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을 타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귀가 닳도록 옥스퍼드 얘기를 들은 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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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제정 당시 2대쟁점]
유진오 박사의 비망록에 나타난 제헌 당시 최대쟁점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용어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제헌의원들 사이에 벌어진 첫번째 논쟁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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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원동지회장 원장길翁
48년5월10일의 총선거와 이후의 보선등을 통해 당선된 제헌의원은 모두 2백9명.당초 제헌국회의 정원은 2백명이었으나 제주 4.3사건으로 제주(2명)에서 선거가 이뤄지지 못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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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로 타계한 尹致暎선생의 생애
9일 타계한 東山 尹致暎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한국헌정사의 산증인이었다.제헌,2.3.6.7대의원을 지냈다.그는 일제치하에서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니며 2.8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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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웅변인협회 창립46주 축하宴
…대한웅변인협회(회장 宋良鎬)창립46주년 기념 축하연이 21일 저녁 서울삼성동 무역센터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렸다. 대한웅변인협회는 49년10월 독립투사 李基南씨 등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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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독립촉성중앙협의회 회의록 下.
이승만(李承晩)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후 독촉)결성작업에 김구(金九)가 이끄는 임시정부(이후 임정)와의 관계가 우익진영 내부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임정과의 결별도 불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