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사람] '할머니 광복군'의 5000번째 안보강의
광복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활약하다 총상을 입고 전역한 오금손(吳錦孫.73.대전시 중구 산성동)할머니가 나라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시작한 '백골 할머니의 안보강연
-
[삶과 추억] 애국지사 박영준 장군
지난달 27일 별세한 박영준(朴英俊.85.예비역 소장)장군은 1930년대 이후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고, 건군 이후에는 초대 정훈감을 지낸 軍의 원로다. 특히 朴장군은 상해(上
-
새롭게 다지는 해방의 뜻…방송사 광복절 특집 풍성
광복절은 방송사로선 가장 큰 '대목' 이다. 올해에도 예년보다 많다고 할 수 없으나 54년 전 해방의 기쁨을 다시 생각하고 통일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점검하는 프로를 내보낸
-
한국인 첫 중국문물감정위원 김형석옹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기준이 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입안의 사탕맛하고 같아 남에게 꼭 집어 말해주기가 힘듭니다.많이 보고 느껴 자기감각을 익히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
민족정기의 우선순위(분수대)
임정선열 다섯분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이 국립묘지에 줄을 잇던 지난 7일 경남 장승포의 대우조선에 근무하는 김만성씨는 서울 목동아파트의 아버지 김광언옹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뿐
-
중국교포 김서명씨 “의붓모친 찾아주오”(주사위)
○…김서명 중국조선족총회 부회장(60·아명 김세명·중앙일보 22일자 6면)이 해방직후 중국 길림성 용정 동명촌에서 헤어진 의붓어머니 김정자(22년생)·의붓여동생 김승미(43년생)씨
-
"처음 느껴본 조국의 사랑에 뭉클"
『사고무친으로 자라온 저희에게 베푼· 조국의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중국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고 이달 선생의 혈육으로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맞아 우리정부가 고인에
-
서울 온 중국TV 악단지휘자 김정평 교수|"동요 반달 북경초교서도 가르쳐요"
『아버님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지만 저는 구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음악이라도 조국에 바치고 싶습니다.』 광복군참모부 참모차장·임시정부 교통부장으로 독립운동에
-
조국에 젊음바친 "장한 여성"
『다시는 이땅에서 나같은 비극의 삶은 없어야됩니다. 어쩌면 내인생 여정이 민족의 아픔일수도 있겠지요. 되돌아보면 정말 기구한 운명일 뿐이지요.』 조국의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이국만
-
독립투사 아들 할복중상/일대사관 앞서 일왕사죄ㆍ방일반대 구호
23일 오후 2시35분쯤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립투사의 후손 김국빈씨(33ㆍ비디오촬영기사ㆍ서울 신천동 시영아파트 124동)가 『일왕은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준
-
자료 공개한 조인제씨
『한 트럭 분이나 되던 자료들이 6·25때 거의 없어지고 지금 남은 건 라면 상자 두 개 밖에 안됩니다. 문건으로 약 9백점을 헤아리는데 그중 2백∼3백점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
방통대 최고령 졸업 문 수열 씨 |"독립운동사 재정리하겠다"
『나의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45년 우리 임시정부의 국내 진공작전요원으로 선발돼 특수훈련까지 마쳤으나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연합군」이 되지 못했던 광복군 문수
-
잃어버린 36년의열단(5)발굴 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 통치의 뒷 무대
일본에 대한 무력 항쟁에서 의열단의 활동은 단연 으뜸이다. 그들은 최후까지 항쟁했고 자랑스럽게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사였을 뿐 새나라 건설에 적응하지 못했다. 약산 김
-
노씨
충남서천에서 3km남짓, 황해의 바닷바람에 출렁이는 초록빛 들판을 가로질러 한산쪽으로 달리노라면 금계산기슭 아늑한 분지에1백10여호 노씨문중이 처마를 맞대고 모였다 3백여년동안 양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79화 육사졸업생들(169)|8기 특별 3, 4반|장창국
8기 특별3반도 48년12월7일 입교했다. 특별3반에는 과거 군사경력이 전혀 없던 사회단체 또는 학생단체의 간부들과 전문학교 이상의 학력소지자들이 비교적 많이 섞여 있었다. 군사경
-
(3583)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6) 장창국
남조선국방경비대가 발족하면서 당장의 과제가 된것은 경비대 간부요원의 양성이었다. 군사영어학교는 과거 군사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통역관」을 양성하는 임시기관이었던 만큼 계속적으로 늘어
-
(3582)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5) 장창국
46년1월14일 남조선 국방경비대의 창설과 동시에 미군정은 그때까지 방임해두었던 각종 사설 군사단체의 해산령을 내렸다. 미군정장관 「러치」(Archer I. Lerch) 소장에 의
-
(5)한국무관학교|
한일합방 한해전인 1909년 우리나라는 군사적으로 또 한차례의 큰변혁을 겪었다. 군대해산 후에도 존속해오던 한국무관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교된 것이다. 신식군대의 간부를 양성키 위해
-
(21) 파주 염씨 -고려 땐 명문거족으로 이름 떨쳐
한국 사실주의 문학에 금자탑을 쌓은 횡보 염상섭과 독립운동가 염온동으로 대표되는 염씨는 고려조의 명문거족이었다. 75년 국세조사당시 염씨는 4만5천여명으로 인구순위는 61위. 문헌
-
꽹과리가락에 미쳐 70평생
서민들의 애환과 저항정신이 송진처럼 끈적이는 우리네 민속「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 가물가물 꺼져가던 이 민속예술을 문화재로서 집대성하기까지엔 광쇠 울음처럼 온몸
-
인간박정희 62성상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집념으로 18년반동안 이나라를 이끌어온 고박정희대통령-. ○…박대통령은 1917년 11월14일 경배 선산군 구미면상모리117번지에서 여
-
집잃은 독립유공
유관순의사의 사촌언니이며 기미년 3·1운동때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동지이기도 한 유 례도할머니(82·서울영등포구고척동271의48)가 최근 홀로 살아온 집을 잃고 노구를 의지할곳이
-
「3·1」함성 수놓아 민족의 얼 되새겨|해마다 병풍·액자 만들기 7년…김예원 여사
『3·1정신, 3·1의 감격은 자꾸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길이 이어받도록 깨우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예원 여사(58·충북 중원군 엄정면 301)는 잊혀져가는 그 날의 뜻을
-
"더는 울지말자 적이 좋아할라"
『이제는 울지 않으렵니다. 더이상 우리가족이 슬퍼한다면, 적이 즐거워하겠기 때문입니다.』 지난가을 노고산전투에서 북괴공비를 소탕하다 흉탄에 쓰러진 고이익수준장의 미망인 이순관(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