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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어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는 아군측이 장거리포를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다시금 악몽에 시달렸다. 총격전 소리가 몇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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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 만에 공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대구를 포기하게 되면 국민들의 사기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며 부산도 지키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부산항에 내려 육지로 올라간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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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대통령은 공군의 김정렬 장군을 불러, 대구로 떠날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상오 10시45분 진해를 출발, 전투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30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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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한국전은 엄연한 전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전쟁이 아닌것 같은 이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것은 전쟁을 피하기를 바라는 면이다.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피한다는 것일까? 소련이 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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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장수와 지갑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수첩을 잃어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수첩이란 지갑을 겸용한것으로 얼마의 돈과 주민등록증·인장·비망록등 일체의 중요한 메모가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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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15)
대통령과 나는 온몸에 땀띠를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잔등은 모기에 물린 곳까지 겹쳐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워낙 물이 부족하여 밤이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수건에 적셔 대통령의 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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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여사비망록 후속자료 새로발견
33년만에 처음 공개돼 중앙일보에 연재중인 「프란체스카」여사의 한국동난 비망록『6·25와 이승만대통령』은 최근 후속자료가 새로 발견됨으로써 독자 여러분에게 한국전쟁의 전비사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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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미군은 계속 더 많은 병력과 장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반면에 적은 방어선 도처에서 준동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썼다. 나는 이 편지들을 장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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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8월3일. 어젯밤에는 미군기들이 밤새도록 상공을 선회했다. 소련은 46대의 비행기를 지원, 곧 공습이 있을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미폭격기들은 북한내의 모든 비행장을 폭격하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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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12)
우리의 17연대가 합천을 탈환했다. 적은 이곳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게릴라들은 구두닦이 소년들같이 살금살금 시내로 잠입해들어왔다. 어제 하루에만 4명의 게릴라를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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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쌀값은 아침 저녁이 다르게 뛰어올랐다. 대통령은 점심을 밥대신 삶은감자나 밀가루음식으로 바꾸도록했다. 사실 대용식으로 바꾸고나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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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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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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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딘」소장 생존여부 몰라 걱정
피난생왈도 어느덧 한달이 다가온다. 이곳 대구에서 누구보다 고생을 하는 사람은 조 지사부인이다. 대통령부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신세를 지고있다. 대통령 임시관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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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6〉|적군, 여유있게 전주를 노려
배탈은 나을 생각을 않고 있다. 밤이면 더욱 심해져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날을 밝힌다. 대통령까지 설사병에 걸려 밤새도록 두 사람이 번갈아 화장실 출입을 했다. 20일 저녁, 적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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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TV토론자료 천 페이지 서류공개
【워싱턴 AP·UPI=연합】백악관은 28일 지난 80년의 미대통령선거를 수일 앞두고 벌어진 「레이건」―「카터」양후보의 TV토론 자료중 「레이건」측이 입수한 약 1천페이지의 서류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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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5〉|"동족가슴에 총 겨누지 말고 투강 권유 전단 뿌려라" 명령
내가 앓는 동안 못 적은 일들을 보충해야겠다. 장석윤 치안국장이 대통령을 조용히 뵙자고 찾아왔다. 장 국장은 나도 잘 아는 분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대통령의 신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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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4)|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7월16일 아침 국방장관은 동해안에 적군 3천명이 상륙했다고 보고했다. 연합군해군은 해안선을 철통같이 지키고있다고 했었는데 이 또한 허풍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해안을 지키고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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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이 박사
인격은 어둠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중앙일보에 실리고있는 「프란체스카」여사의 비망록을 보면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멀리서, 혹은 남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듣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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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3)|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대통령이 부산에 머무른지 닷새째인 7월7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는 미국 통솔 하에 유엔군총사령부를 설치키로 결의하고 초대연합군사령관에「맥아더」장군을 임명했다. 이보다 앞서 7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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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대전으로 남하한뒤 대통령은 침실머리맡에 모젤권총 한자루를 놓고자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차디찬, 그리고 싸늘한 총구가 기분나빴다. 나의 이런 표정을 읽은 대통령은 『최후의 순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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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이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발발 33주년―. 수도서울을 적의 수중에 넘겨주고 치욕적인 후퇴와 후퇴의 거듭끝에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보루로 서울수복까지 고난과 파란의 전시국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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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납기처리 한국협조에 심도, 사의를 표명
【서울=내외】중공민영항공국장 심도는 임일 중공 여객기 피납사건과 관련한 담화를 발표,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당국이 취한 협조와 편의제공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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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한제국의 최후(5)
일본의 한국 병합 공작에 항쟁한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그는 을사조약을 강요했던 [이또]를 저격함으로써 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시위했다. 그는 일본법정을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