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개헌안에 대한 성명서

    한반도를 에워싼 「아시아」의 판도는 걷잡을 수 없는 복잡성을 내포한 채 격동과 변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듯 긴박한 정세 속에서 자위태세의 강화와 함께 우리의 활로를 스스로 개척하

    중앙일보

    1972.10.28 00:00

  • "능률 극대화한 민주제동의 모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비상국무회의는 오늘 국민 모두가 한결같이 바라고 있는 안정과 번영, 그리고 통일에 대한 굳은 의지로써 헌법개정안을 심의 의결하여 이를 국민 앞에 공고합니다.

    중앙일보

    1972.10.27 00:00

  • 10·17 지지성명

    사회 각 단체는 27일에도 10·17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강관공업협회(이사장 주창균)=전변하는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조국통일을 성취하는데 시의 적절한 구국적

    중앙일보

    1972.10.27 00:00

  • 10·17 지지성명

    26일에도 각 사회단체들이 10·17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농업경제부흥연구위원회(위원장 박동종)=민족진영의 대동단결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혁신적이고 능동적인 조치이다.

    중앙일보

    1972.10.26 00:00

  • 10·17 비상조치 각계의 지지성명

    전국 사회 각 단체는 박정희 대통령의 10·17 특별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농협중앙회(회장 전윤환)=농민조합원들에게 용기와 힘을 안겨주는 것으로서, 특히

    중앙일보

    1972.10.23 00:00

  • 중앙대책협의회 개최-관계장관·청와대 비서실장·경호 실장으로 구성

    박정희 대통령은 10·17특별 선언에 따른 비상 국무회의의 하부 기구로 관계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및 경호 실장으로 중앙 대책 협의회를 구성했다. 박 대통령은 18일 상오11시

    중앙일보

    1972.10.19 00:00

  • 대통령 10월17일 특별 선언-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를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

    중앙일보

    1972.10.18 00:00

  • 공산주의와의 평화는 힘의 우위확보에서 가능

    박정희 대통령은 25일 「멕시코」에서 열린 제6차 세계반공연맹(WACL) 총회에 「메시지」를 보내「7·4」남북성명을 발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건실한 반공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일보

    1972.08.25 00:00

  • (3)인도적인 비동맹 중립정책

    【뉴델리=성병욱 특파원】인도는 47년 8월 15일 독립이래 「네루」의 외교노선에 따라 비동맹 중립정책을 취해왔다. 이 비동맹정책은 「판치시리」로 알려진 평화5원칙과 반식민주의를 그

    중앙일보

    1972.08.25 00:00

  • 사상투쟁과 국력의 강화|7·4성명과 한국의 진로|신상초

    7·4성명으로 말미암아 남북간의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남-북간에 현재와 같은 세력균형이 지속하는 한 남-북 대립은 무력전쟁보다도 정치전쟁의 성격

    중앙일보

    1972.07.11 00:00

  • 국회, 남북성명관계 질문|김총리보고-사고의 비약은 금물

    국회는 5일 본회의서 김종필 총리로부터 남북정치회담의 경위와 내용에 관한 보고를 듣고 질문을 시작했다. 김총리는 보고에서 『남북정치협상을 추진한 정부의 태도는 무력을 사용 않고 평

    중앙일보

    1972.07.05 00:00

  • (326)|「아이크」 집권과 내한 (2)|등장의 배경 (2)|6·25 21…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해리·S·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재출마는 단념했지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프레드·빈슨」 대법원장이 후보가 되기를 바랐으나

    중앙일보

    1972.05.15 00:00

  • 박대통령 신년사 요지

    민족의 비극인 6·25동난이 종전 아닌 휴전으로 끝을 맺고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대신 긴장과 분단을 강요한 이래 그 비극은 더욱 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농토를 기름지게 하고

    중앙일보

    1972.01.01 00:00

  • ①「닉슨」·「키신저」

    ①「닉슨」·「키신저」 ②모택동·주은래 ③「레오니드·브레즈네프」 ④「빌리·브란트」 ⑤「히드」·「퐁피두」 ⑥좌등영작 ⑦「라만」·「간디」·「야햐·칸」 ⑧「대니얼·엘즈버그」 ⑨「살바도르

    중앙일보

    1971.12.09 00:00

  • 「티우」월남대통령의 취임

    「구엔·반·티우」월남대통령은 31일 4년 임기의 대통령취임선서를 마치고 집권 제2기에 접어들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바와 같이「티우」대통령은 지난 10월3일에 실시된 선거에서 경

    중앙일보

    1971.11.01 00:00

  • 다시 본질의 추구를 다짐한다

    중앙일보는 오늘 지령 1860호로써 창간 6주년을 맞는다. 6년 전의 오늘, 국내외의 큰 성원 속에서 발족한 본보는 그 동안 짧은 시일 안에의 우리 언론사상 유례없는 장족의 발전

    중앙일보

    1971.09.22 00:00

  • 7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사

    사랑하는 5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가 멎은 지 어느덧 4반 세기. 오늘 우리는 인류의 이상인 평화와 번영을 다짐하는 새 시대의

    중앙일보

    1971.07.01 00:00

  • 박대통령의 3선

    27일에 실시한 제7대 대통령선거는 공화당의 박 후보가 6백34만여 표를 얻어 차점자인 신민당의 김 후보보다 94만여 표를 더 얻어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금차 대통령

    중앙일보

    1971.04.29 00:00

  • 박·김 후보, 연설서 안보 공방|춘천·원주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두 번째 유세를 15일 하오 춘천에서 가졌다. 김대중 신민당 후보도 이날 제천과 원주에서 유세했다. 두 후보의 유세는 안보논쟁에 촛점이 맞추어져 박 후

    중앙일보

    1971.04.15 00:00

  • 박 후보 대전·김 후보 부산서 유세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대전에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부산에서 같은 시간인 10일 하오 2시 첫 대도시 선거 강연회를 열었다. 박정희 후보는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강연에서

    중앙일보

    1971.04.10 00:00

  • 이 달의 종합지

    71년은 선거의 해이다. 여야당이 선거전열을 정비하고 여당과 야당이 각기 연두기자회견을 통하여 선거 이슈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달의 종합지는 이 시류에 편중하여 정치와 외교에 관

    중앙일보

    1971.02.16 00:00

  • 새 구도찾는 세계

    아널드.토인비 영국의 석학 아널드.토인비교수는 일본은 앞으로 대외관계에서 한정된 국가적 이익을 인류복지라는 보편이익으로 승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인비교수는 또 그의 자택에서

    중앙일보

    1971.01.01 00:00

  • 일본인의 미학

    70년대의 개막과 함께 다시 일본도가 반짝이고 있다. 우리는 최근에 일본도를 휘두르는 두 개의 사건을 보았다. 그것은 일본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했던 적군파의 일본도와, 일본작가 삼

    중앙일보

    1970.11.26 00:00

  • 카스트로 여동생 화니타여사 단독회견

    「쿠바」수상 카스트로의 누이동생「화니타」여사는『한국은 세계 반공전선의 주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로서 앞으로드 계속 공산주의와 싸워 이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5일부터 일

    중앙일보

    1970.09.1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