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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12월5일. 나는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활약하고 있는 「올리버」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올리버」박사께. 저는 귀하에게 보내는 편지를 속기시켰습니다만 아직도 타이프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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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동해안쪽으로 북진했던 우리국군이 미제10군단을 10여일 앞질러 먼저 원산을 점령하는 바람에 잔뜩 약이 오른 「워커」장군의 경쟁자 「앨먼드」장군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했다. 북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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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6)-육사졸업생들(209)「도드」준장 납치
52년5월7일 아침 거제도 포로수용소장 「프랜시스 T 도드」준장은 제76포로수용소 대표로부터 면담요청을 받았다. 「도드」준장은 하오2시 그의 보좌관 「레이븐」중령을 대동하고 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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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방어능력을 지원"
83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군 I군단장 「존·브랜던버그」중장은 14일 팀스피리트 훈련은 한미군사안보조약에 따라 한국군의 방어능력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브랜던버그」중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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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0) - 제79회 육사졸업생들(103)| 장창국| 정규7기와 「6·25」
7기 정규는 제주도반란사건, 여순 반란사건 때 토벌작전에 일선 소대장으로 참가한 것을 시발로 6·25발발 때는 전부가 중대장 또는 연대참모로 참전, 휴전당시는 대대장 또는 사단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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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육사졸업생들(80)|5기주체 중도탈락
「장도영일파 44명 반혁명사건」으로 5기 혁명주체들이 대부분 거세된 것은 5기의 불운이었을뿐 아니라 우리 군으로서도 손실로 작용한 아쉬움이 있다. 4년제 정규과정 이전의 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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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키신저
그를 두고 「키신저」의 복사판이라고 말한다. 별명마저도 『키신저의 키신저』. 미국의 한 주간지가 붙인 이름이다. 「레이건」정부의 새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헤이그」장군의 면모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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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통령, 한미1군단 시찰
최규하 대통령은 29일 상오 한미1군단사령부 서부전선 최전방 관측소를 돌아보고 수도권 방어방벽 준공식에 참석, 전선의 철통같은 방어경계태세를 확인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최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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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노무대|지원작전
작전지원을 위한 단순한 용역으로 시작된 노무대가 정규군과 같은 사단편제와 지휘체계를 갖추어 「준군대」로 변모하면서부터 KSC말석들에게도 제대와 휴가제도가 생겼다. KSC로 개편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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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군수보급(4)|지원작전(4)
실탄 없는 총이 아무 쓸데없는 것처럼 군수보급이 뒤따르지 않는 작전이란 있을 수 없다. 물자의 대량 소모를 수반하게 되는 현대 국지전은 군수보급상태에 따라 전세가 좌우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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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지원작전(3)|군수보급(3)
부산항에 산적된 미 군수물자들은 다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신속히 전방으로 수송 됐다. 한국군에 대한 수송·보급은 주로 우리 육본 군수 국과 해군수송선들이 담당, 추진했다. 인사(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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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우방 참전부대(3)
(2) 한국전에 참가했던 「터키」는 지금도 매년 11월29일을 『군우리「데이」』로 정하고 그들의 한국참전을 기념하고있다. 그만큼 「터키」는 한국전쟁 중 그들이 참전1개월만에 겪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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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우방 참전부대(2)|「터키」군의 사투(1)
한국에서 전쟁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50년6월29일 「터키」정부는 한국에 파병하겠다는 의사를 「유엔」에 보내왔다. 그러니까 우방 중에서도 「터키」는 상당히 빨리 참전의사를 표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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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피어린 산과 언덕 ⑦
「피의 능선」을 비롯한 「펀치볼」 일대의 고지 쟁탈전은 피아의 살인적인 화력에 다 장병의 투지로 승패가 판가름나는 인내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단이나 군단 규모로 단숨에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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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망속 분전 특공대 전과|「적성리 전투」의 비화
현지 주민들의 말로만 전해 오던 적성리 전투(경북 문경군 동로면)의 분전 기록이 22년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미제 10군단 배속 한국군 특별 공격대(대대장 배동걸 소령·작전 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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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휴전회담의 개막(15)
공산측은 8월22일 밤중에 미 공군기가 개성회의장의 중립지대를 폭격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결과 이는 전혀 허위날조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밤중에 급히 공동조사를 요구하여 급조증거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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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해단식
【호이안(월남)=신상갑특파원】「귀신 잡는 해병」이 청룡부대가 26일 상오 10시 월남 「호이안」에서 역사적인 해단식을 가졌다. 창설 6년4개월만에 해단하는 청룡부대는 65년9월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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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적의 춘계공세(5)
전회에 이어 국군 제5사단과 그 우측에 인접한 제7사단의 전투상황을 살펴보겠다.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중공군은 춘계공세 때 중부와 중동부에 주공을 두었기 때문에 이 방면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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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적의 춘계공세(4)
적의 춘계 공세가 시작될 때 한국군은 도함 9개 전투 사단이 전선에 배치돼 있었다. 서부의 미제1군단 산하에는 국군 제l사단(사단장 강문태 준장)이, 그 우측의 미 제9군단에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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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적의 춘계공세(2)
(1) 영국이 한국전쟁에 대해 취한 태도는 매우 「아이러니컬」했다. 「런던」정부는 「유엔」결의에 호응하여 재빨리 한국전에 1개 보병여단과 2개 포병대, 그리고 10여척의 군함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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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8)
중공군이 11월27일에 미제10군단에 대해 제2차 공세를 전개할 때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던 한국군 제1군단의 수군사단과 3사단은 한만 국경의 회령과 무산을 바로 눈앞에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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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유엔군의 총퇴각(6)
(1) 11월26일, 중공군의 제2차 공세가 전개되었을 때 「네드·아먼드」장군이 지휘하는 미제10군단은 한국동북부에 깊숙이 쳐들어가 있었다. 한국군 제1군단의 수도사단과 제3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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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노병의 낙조|유엔군의 총퇴각(1)
1950년11월24일, 「유엔」군의 종전 공세 전개를 직접 보려고 동경에서 평양으로 날아온 「더글러스·맥아더」원수는 자신만만한 성명과 함께 「크리스머스」까지 병사들은 집으로 몰아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