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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5)제80화 한일회담(194)|한국통「마에다」방한
일본정부는 61년8월6일 「마에다」(전전리일) 외무성 북동아 과장을 서울로 파견했다. 현재의 「마에다」 주한일본대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인천에서 나서 경성중학(지금의 서울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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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연금, 하야시켜 유엔 군정설립 한때 계획
미국정부는 한국동란기간 중 한때 원자탄 사용계획과 함께 이승만대통령을 연금, 하야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최근30년 만에, 비밀해제 된 영국외무성 극비문서에서 밝혀졌다. 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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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자유당과 내각
『국가에 속한 적산기업체를 운영하는 자는 정당운동에 헌금을 못하는 것이니 이를 상세히 조사하여 은밀히 보고하라.』 52년2월5일자 「대비지 제2호의1」로 장석윤내무장관과 육군특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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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자유당과 내각(10)
국회와 대통령간의 대립 사례들을 들추는것은 이것이 부산정치파동의 소인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안의 각 정파들이 연합해 장면총리의 대통령추대와 내각책임제 개헌을 동시에 추진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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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4)5기생과 「5·16」-제79화 육사졸업생들(77)
5·16은 많은 육사5기생들에게도 생의 진로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5·16군사혁명에 이른바 「주체」로 참여한 5기생들은 ▲김재춘(55·경기김포 당시 대령·6관구참모장최고위원·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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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회고록 국내중점연재 「신의를 지키며」…캠프데이비드 그 후④
내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 먼저 가있던 「보브·리프슈츠」보좌관이 「바이츠만」이스라엘 국방상의 전갈을 보내주었다. 만약 이집트 쪽에서 이스라엘 내각이 승인한 조약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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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의 초점은|자백의 임의성| 박상은양 피살…정재파군 내일 첫 공판
여대생 박상은양(21)피살사건의 첫 공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J군으로 표기했던 장경수군(22·K대3년)이 검찰에서 정재파군(21·I대3년)으로 뒤바뀌어 구속된지 꼭 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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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혁명전야⑦
61년의 정치는「3월 위기설」과「4월 위기설」에 부대꼈다. 윤보선 대통령은 그해 3월 정례기자회견에서 위기설에 대해『지금은 난국이기는 하지만「위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장면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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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회오리
제2공화국의 마지막 밤이 된 61년5월15일. 대롱령관저 청와대는 다음날 서울에 도착하는 페루의「마누엘·프라도」대통령의 영접준비로 부산했다. 윤보선대통령이 일을 마치고 침실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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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증으로 자백강요…짓밟힌 인권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은 6일 검찰이 그 동안 경찰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심문을 계속해온 J모군을 귀가시키도록 지시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에서는 수사본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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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6)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22)|2차 유엔안보리
6월26일「트루먼」대통령을 만나고 난 뒤 장면 대사와 나의 마음에는 다소 활기가 솟았다. 대사관에 돌아와「트루먼」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일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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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한미 외교 요람기(21)-트루먼 대통령 면담|한표욱
미국 대표와 「트리그브·리」 유엔 사무총장의 적극적인 로비, 소련 대표 「말리크」의 불참 덕분에 장면 대사는 6월25일(일) 열린 유엔 긴급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피침 당한 한국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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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정치인… 선거 대비 조직 금방 할 수 있다|김대중씨 관동클럽 1문1답
▲출생 이후 정치활동 시작까지의 신상명세를 말해 달라=전남 신안군 하의면이라는 한 섬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나 거기서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목포로 이사했다. 5년제 상업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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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장‥공중분해막게 대행 수락|제소2명 뒤늦게 배석…언론계엔 회견안내전보 배달.
○‥신민당 정운갑전당대회의장이 총재대행수락을 정식선언 하기직전 당내의 김령배 김현규 김원기 조세형 허경만 김제만 유용근 이상민의원 등 초선의원 8명은 회견장소인「코리아나·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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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위원장면담요청 거절
여당측이 계속 대야강경발언을하는데 대해 신민당의 신승환의원은 『야당농성이 하루 이틀만 지나면 흩어질 것으로 알았다가 그게 안먹혀들어가니까 협박을 하는 것』 이라며 국회해산얘기도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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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591)제49화 외국유학시절(47)
1956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사무실은 지금의「코리아나·호텔」바른 편 골목으로 들어가 첫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빌딩」2층에 있었다. 그 다음해 1957년 9월에 동경서 제29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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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진산 시대」|파동과 기복의 야당 활동
진산의 정치력엔 파동과 기복, 그 굽이서의 영욕이 얼룩져 있다. 생애의 파란은 숙명이기도 했는지 소년 시절부터 순탄치 못했다. 진산은 경성 고보서 교실에 「독립 만세」란 벽보를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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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상무대 사계(22)|윤석오
(라) 남은 각료 중 교통장관에는 군정관료 케이스로 민희식씨, 체신장관에는 그 무렵 몹시 불만이 많던 무소속 구락부의 무마를 위해 이 구락부 대표인 윤석구 씨를 임명했다. 윤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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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그 정책과 논의 23년의 기복
8·15 해방이 연합국의 승전에 힘입었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유엔」이 산파역을 맡은 데서 연유하여 우리의 국토통일 문제는 줄곧 「유엔」을 기반으로 그 테두리 속에서 다루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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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 총통의 일기로 밝혀진 서안사건의 진상
지금부터 31년 전. 1936년 12월 12일 아침 5시 중국 서안에서 발생한 장개석 총통의 납치사건에서 주은래가 「아이러니컬」한 일역을 맡았다 함은 이미 알려진 사실-. 당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