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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경영' 빛난 노량해전, 일본의 대륙 진출 300년 늦췄다
━ 윤동한의 ‘충무공 경영학’ ⑥ 〈끝〉 정유재란 때 칠천량에서 대패한 원균의 조선 수군은 궤멸 상태였다. 1597년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 교지를 받은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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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의 한중일 삼국지] 조총에 쓰러진 조선, 무기 약하면 피눈물 흘린다
━ 족쇄 풀린 한국 미사일 사거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상설 전시관. 임진왜란 때 사용된 왜군 조총과 조선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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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일본, 유럽 접하고 중국 극복
일본인 이야기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메디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와 무역 갈등으로 양국 관계가 여전히 삐거덕대는 가운데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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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진량(萬國津梁)의 종
유주열전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 만국진량의 종 최근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과거 류큐(琉球)국의 왕궁이었던 슈리성(首里城)을 가 보았다. 1941년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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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레이저·레일건·EMP ‘삼총사’가 미래 전쟁터 지배한다
━ 화약무기 대체하는 전자무기 1575년 6월 29일 일본 나가시노성 인근의 시타라가하라 벌판. 1만2000명의 다케다 가쓰요리 군은 3만8000명의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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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요깡(羊羹)과 카스텔라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가 안 좋다고 하지만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400 만 명인데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그 절반도 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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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 북벌론 꺾은 사대부들의 이중성
윤휴 초상. 진정한 북벌론자인 윤휴는 사대부의 각종 특권을 폐지해 민생을 강화한 뒤 광활한 요동 지역을 수복하자고 주장했으나 호응하는 사대부는 거의 없었다. 사진가 권태균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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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임진왜란을 극복
동래부순절도 : 동래부사 송상현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일본군의 요청을 거부하고 결사 항전을 하다 성민(城民)들과 함께 전사했다. [사진 권태균] 【총평】 고려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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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 요약 (24)
선조는 학문을 좋아하고 예술에도 능한 임금이었다. 『열성어필(列聖御筆)』에 실린 선조의 그림과 글씨. 제목은 난죽도(蘭竹圖). 동아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가 권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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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일본의 사과도 제대로 ‘알아야’ 받지
이 현JTBC 국제부 기자‘마더 파더 젠틀맨’을 외치는 싸이의 노래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2년 전, 또 다른 젠틀맨이 화제가 됐다. 야스쿠니 신사(神社)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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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일으켜 회천, 막부 타도한 풍운아 다카스기 신사쿠 … 결단·돌파의 드라마, 아베 정치세계를 지배하다
사무라이 도복 차림의 다카스기 신사쿠. 그는 검술의 고수였다. [박보균 대기자 촬영] 민초 일으켜 회천, 막부 타도한 풍운아 다카스기 신사쿠 … 결단·돌파의 드라마, 아베 정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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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NIE] "이순신을 마땅히 죽여야 할 것이다"
1 말에서 떨어진 뒤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싸매고 무과시험을 마친 이순신. [사진 현충사]2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복원한 거북선.3 학이 날개를 펼치듯 왜군 을 감싸 공격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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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이순신의 라이벌 와키자카
영화 ‘명량’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왼쪽)와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다. 배우 조진웅이 와키자카로, 류승룡이 구루지마로 열연했다. 이들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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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홍콩과 히코지마
얼마 전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 갔다가 히코지마(彦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이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에 대한 충격이 없었더라면 히코지마는 지금 쯤 홍콩처럼 외국인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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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외세배척론자 이토, 영국 유학 뒤 개화파로 변신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조선과 일본은 모두 개항 과정에서 격렬한 진통을 겪었다. 일본은 많은 진통 속에서도 개화의 방향성은 잃지 않았고 이토 히로부미 같은 개화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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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외세배척론자 이토, 영국 유학 뒤 개화파로 변신
하세가와 사령관과 통감부로 가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 이토는 1873년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 등과 함께 ‘국력 양성을 우선해야 한다’며 조선 정벌론에 반대해 이를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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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료몬 전문가 도몬 특별기고
도몬 후유지(童門冬二)일본인들은 왜 사후 143년 만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찾는 걸까. 요즘같이 침체되고 움츠러들 때 일본인은 료마에게서 어떤 리더의 능력을 갈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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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아소 vs ‘도쿠가와’ 하토야마, 두 쇼군의 대회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자네가 당을 이끌어 주게.”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이듬해인 1946년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자유당 총재는 굳은 표정으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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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7)
제2장 신라명신 언덕길을 오르는 도로 위에는 떨어진 꽃잎들이 죽어서 어지럽게 하얗게 쌓여 있었다. 저렇게도 아름다운 꽃잎이 저렇게도 야속하게 떨어질 수 있다니, 저렇게도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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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2)
제1장 붉은 갑옷 우에스기는 이미 다케다 신겐이 애지중지하던 애첩 중의 하나를 밀정으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때 우에스기와 다케다 신겐은 '가와나카지마(川中島)' 에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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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8)
제1장 붉은 갑옷 가이센 역시 오다의 숨겨진 속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웃으면서 선상 위에서 '마음자리가 적멸에 이르면 불도 스스로 시원하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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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7)
제1장 붉은 갑옷 그러나 그것만이었을까. 오다가 혜림사를 불태운 것이 오직 세 사람의 배신자를 인도해 달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오직 겉으로 드러난 이유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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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5)
제1장 붉은 갑옷 우선 가쓰요리의 가신들이 모반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대대로 다케다 가문의 충신이었던 그들은 몰래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과 내통하였으며 마침내 1582년 연합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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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4)
3년 동안 절치부심하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우선 자신의 영토에서 농민들을 확보하여 상비군을 편성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농민들은 농번기에는 논밭에 일하러 나가야 하고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