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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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1장 붉은 갑옷

가이센 역시 오다의 숨겨진 속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웃으면서 선상 위에서 '마음자리가 적멸에 이르면 불도 스스로 시원하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어버린 것은 오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그 '어기순무' 에 대한 비밀을 지킴으로써 다케다 신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오다가 혜림사를 불태워버린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그 '어기' 와 '붉은 갑옷' 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절이 불태워질 때 불타 죽은 다케다 가문의 일족과 승려들처럼 혜림사 어디에 숨겨져 있다가 함께 불타버린 것일까.

아니면 일본 역사 속의 수수께끼처럼 후지산 산록 원시림 어느 곳에 아직도 숨겨져 있을 다케다의 보물과 같이 세상의 눈을 피해 어딘가에 사장돼 있는 것일까.

다케다 가문의 가보였던 '어기순무' 에 대한 오다의 병적인 집착은 혜림사를 불태운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원래 다케다 신겐에게는 다섯명의 딸이 있었는데 둘째 딸은 아나야마 바이세쓰(穴山梅雪)에게 시집을 갔고, 셋째 딸은 기소 요시마사(木曾義昌)에게 시집을 갔다.

두 사람은 다케다 신겐의 사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군과 내통하여 배반함으로써 가쓰요리의 패배를 촉진시켰는데 이들의 배신을 전해 들은 가쓰요리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아,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로구나. "

'어기순무' 에 대한 오다의 집착은 배신하여 자신의 부하가 된 아나야마에게까지 미쳤다. 어느 날 아나야마는 다케다 신겐의 딸인 자신의 아내에게 칼 한자루를 내어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배신하여 살아남은 것은 비록 일본 무가의 명문인 다케다 가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아나야마 가문이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

아나야마는 다케다 신겐의 사촌동생으로 신겐의 딸과 이중으로 인연을 맺은 친족이며, 가신단의 정점에 서있던 핵심인물이었다.

"그런데 새로이 주군이 된 오다 노부나가님께서 다케다 가문의 가보였던 '미하타다테나시' 를 찾고 있소이다. 이제 나는 말을 갈아타서 새 주인을 모시게 되었소. 어쩔 수 없이 이 가보를 찾아드릴 수밖에 없소이다. "

아나야마의 아내는 남편의 말이 무엇을 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내어준 한자루의 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가보였던 그 보물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가를 알고 있지 못하였다. 설혹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다케다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입을 열어 말할 수 없음이었다. 또한 자신이 살아서 목숨을 부지한다면 남편의 입신양명에 다케다 신겐의 둘째 딸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그녀는 순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남편 아나야마가 준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어기순무' 에 대한 오다의 집착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 후 오다 노부나가는 교토의 혼노지(本能寺)에 숙박하였다가 자신의 부장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습격을 받아 자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3개월 전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의 습격을 받아 자살하기 직전 가쓰요리가 한탄하였던 마지막 말을 천하통일을 앞두고 불의의 습격을 받아 자살하면서 오다는 문득 떠올렸다.

"아아, 그러하구나. 적은 항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로구나. "

오다의 이 마지막 말에서 일본의 가장 유명한 속담이 태어나게 되었다.

'적은 혼노지 안에 있다. '

그 무렵 오다의 적은 중국지방의 강대세력이었던 모리(毛利)씨였다. 다케다 가문을 전멸시켰던 오다는 마지막 차례로 모리 가문을 토벌하기 위해서 직접 증원군을 거느리고 출병하기 위해 하룻밤 교토의 혼노지에 머물고 있다가 자신의 부장이자 제2인자였던 아케치의 급습을 받아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는 적은 밖에 있는 모리 가문이 아니라 뜻밖에 내부인 혼노지에 있다는 말로 즉 가까이 내부에 있는 적을 주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오다의 '어기순무' 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단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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