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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대 3위 인도공대의 비결은
전국 1%의 수재들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밤새 토론하는 대학. ‘진리는 신이다(Truth is God)’라는 명패가 곳곳에 붙어 있다. 관련기사 "IIT가 유명해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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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취임 100일 맞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
서울대 제24대 이장무 총장이 취임한 지 100일을 맞았다. 그는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중앙일보와 했다. 때마침 올해는 서울대 개교 60주년이다. 인생으로 치면 서울대는 이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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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과학+예술' 연구 도시 생긴다
과학자 3000명과 예술가 1000여 명이 함께 사는 도시. 매일 아침이면 물리학자와 화가, 공학도와 조각가가 곳곳에서 티 타임을 가지며 서로의 철학을 공유하고 수시로 포럼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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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개교 59주년 서울대 '자부심의 위기'
지난주 서울대에선 이색 행사가 있었다. 경영대학 학술동아리 N-CEO(Next Generation CEO)가 '서울대생 자부심 갖기 운동'을 벌인 것. 동아리 회원 5명은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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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공학인들의 정책 제언
1. 배 경 ○ 국가 경쟁력과 공학기술 - 지식정보사회의 도래와 시장개방추세는 세계를 하나의 생산체제와 소비시장으로 만들며 무한경쟁 시대를 촉진시키고 기술력은 한 나라의 경쟁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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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기 괌추락 때 숨진 아들 모교에 장학금
1997년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때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모교인 서울대 법대에 거액의 장학금을 기증했다. 서울대는 26일 괌 추락사고로 사망한 법대 대학원생 김도연(金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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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정치]李·盧 "예산 늘리고 위상 높이고"
이공계 기피현상과 함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과학기술계에도 어김없이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각각 10월 18일과 11월 18일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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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킹'이라면, 인터넷업체는 '킹메이커' - 3
1+1=3일 수도 물론 전혀 상반된 쪽에서 합병을 바라보는 일도 가능하다. ''1+1=2''가 아니라 3이라는 공식이 M&A에서 적용될 수 있고 특히 인터넷 경제에서 그 공식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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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나라 사랑 이야기
미국 선교사였던 그레슨 박사가 쓴 '그레슨 선교 수기' 에 의하면 1907년 정미 (丁未) 의병사건 때 성진 지방에서 일어났던 의병투쟁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일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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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인준 누가 못받았나…이윤영·신성모·백낙준 등
우리 국회는 정부의 초대 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기록을 갖고 있다. 48년 7월 제헌의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李承晩) 박사는 첫 총리로 이북 출신의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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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묘 29곳 위치·공적 담아|도봉구 묘역 안내책자 발간
서울 도봉구가 37회 현충일을 앞두고 북한산기슭 29개소에 자리잡은 독립투사·대정치가·선인 등의 묘소위치·비문내용·약력 등을 소개한 책자를 발간, 산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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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경선사/DJ가 YS에 대역전승/70년 신민당
◎분열과 통합의 발자취… 정치발전에 기여/56년 신익희장면의 후보대결이 효시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은 민주당에도 불길이 댕겨져 경선정국이 5월을 뒤덮고 있다. 국민·신정당도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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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밀착된 「민간경제 실세」
국회의원 뇌물외유 사건으로 무역 특계자금이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새삼 이를 요리해온 무역협회, 그리고 그 「장」자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역협회 회장은 어떤 자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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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 분명했던「명망가 정치인」/고 윤보선 전대통령 생애와 정치역정
◎반유신 앞장… 대권도전 두번/신군부 들어서자 「투쟁」멈춰/여름에도 정장ㆍ여행땐 회색장갑 해위 윤보선 전대통령은 명망가 야당시대의 마지막 정치인이었다. 조선조말 명문세가 출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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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도연박사 추도식 추성대씨(전국연부의장)
등상산추도위원회는 10일상오 10시 서울동숭동 흥사단에서 고 김도연박사 20주기 추도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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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도전정구영 비망록 12월 민정이양, 당안으로 추진
3·l6군정연장선언은 5·16주체를 빼곤 누구도 원치않는 사태였다. 다만 공화당만은 딜레마였다. 민간출신들은「정당정치회복을 내걸고 출발한 공화당이 정당정치를 거부하는 군정연장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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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박사 추모 모임
◇고 상산 김도연 박사의 15주기 추도회가 19일 서울 수유동 고인의 묘소에서 엄수됐다. 이 자리에는 이재형 민정당 대표위원·유치송 민한당 총재 등과 다수 여야의원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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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초대내각⑨
내각과 국회의 미숙하고 뒤죽박죽인 일 처리, 끊임없는 잡음, 그리고 건국초의 혼란에서 비롯된 사건들이 내각의 안정을 흔들었다. 내각구성 2개월만에 절도사고로 민희직 교통장관이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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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청(5) 제자·철농 이기우|국정의 본산「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3류조각
대통령의 내각구상은 내무로인해 제1안이 전면 수정되었다. 사실 장택상씨의 내무기용은 인촌등 한민당이 반대했지만 그때 형펀으론 내무만은 군정하의 경무부장과 수도청장을 피해 제3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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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견도 안물어
나도 이화장에 무상출입하던 한사람이었지만 인촌 (김성수씨 아호) 과 함께 한민당 내각을 건의했다가 실패하고는 이박사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리라는걸 알았습니다』최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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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7)제68화 개헌축사 사사오입개헌
「5·20」선거에 대해 내가 백마디를 하는것 보다 국회의 공식기록인 「국회사」를 인용하는것이 낫겠다. 『전국 각 선거구에는 선거전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탄압이 시작되어 특정한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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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6)제68화개헌축사 사사오입개헌
1954년의 「5·20」선거는 처음부터 개헌문제가 주요「이슈」로 등장했다. 자유당은 도처에서 『개헌만이 살길이다』고 외쳤고 민국당을 포함한 야당쪽 후보들은 『그리되면 독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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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민주당시대(40)-끝내 분당
60년9월 중순 구파의 신당작업이 본격화 됐다. 첫 작업이 발기준비위원 서명공작. 그러나 정국안정을 위해 신파와 합작하자는 민관직 이충환 의원 등의 분당에 난색을 보였고 이민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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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9)제63화 민주당 시대(39)
구파를 대표하여 반도「호텔」회담에 나간 백남훈 최고위원은 『우리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협조해주기로 했으니 신파에서 내각을 보장하라』고 말해 구파입각 요구를 사절했다. 그렇지만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