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주제가에 내용강화
다큐멘터리 프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TBC 라디오의 『일제 36년사』(매일 밤 9시40분)가 TBC자체 프로 강화의 첫 주자로 등장, 보다 다양하고 실감 있는 프로 제작
-
조국광복에 바친 젊음-고 이범석 장군의 일생
청산리 싸움의 용장 철기 이범석 장군이 파란 많은 일생을 마쳤다.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나 올해 72세.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침략의 풍운이 사납던 때 태어났던 이범석 장군은 19
-
「3·1」함성 수놓아 민족의 얼 되새겨|해마다 병풍·액자 만들기 7년…김예원 여사
『3·1정신, 3·1의 감격은 자꾸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길이 이어받도록 깨우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예원 여사(58·충북 중원군 엄정면 301)는 잊혀져가는 그 날의 뜻을
-
(393)|경무대 사계(20)|윤석오
(나) 이화 장엔 본 채와 따로 떨어져 정원을 거쳐 언덕 위에 조그만 별채가 하나 있다. 본격적인 조각작업은 이 별채에서 행해졌다. 이 박사는 조각문제에 관계되는 사람만을 별채에
-
두 의원 세비 지법서 압류
4일 전남도 순시를 마친 박 대통령은 날씨 때문에 비행기 대신 동차 편으로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가면서 김보현 농림, 장예준 건설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등 차중 집무. 박 대통
-
광복군 관계서류 등 발견
서울시는 13일 밤 일제 때 마련되어 시청본관4층 북쪽에 놓여있는 금고를 20여년만에 열어본 결과 1946년의 한국잡지 및 해방 전 광복군관계서류, 고 김구 선생 친필, 탄약 등
-
(231)유엔군의 총퇴각(4)|평양철수(3)
피란 길에는 으례 여러 비극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평양철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 당국에서 민간인의 철수계획을 마련하지 못해서 큰 혼란을 빚어냈다는 것은 전회에서 밝힌 대로
-
광복회원 11명 입건
【문산】24일 고양경찰서는 광복회감사 노복선씨(59·서울 서대문구 홍제동139의5)등 광복군출신 독립유공자 11명을 방화협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일인위령탑 태워
22일 낮12시30분쯤 광복회감사 여면선씨를 비롯한 광복군출신 독립유공자 30여명이 서울시가 세워놓은 경기도고양군벽제면벽제리 일본인 합사대(위령탑)에 몰려가 휘발유를 뿌려 위령탑
-
「광복」에 반생 불태운 정치 5년 생|새 신민당 수 김 홍일 씨의 어제와 오늘
새로 신민당당수로 선출된 김홍일씨는 중국과 만주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반생을 불태운 항일독립투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9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김 당수는 17세 되던 해
-
(184)|방송 50년(13)|이덕근
태평양전쟁이 중반에 들어선 1943년 3월에서 4월까지 사이에 경기도 경찰 부의 고등계 형사들이 방송국의 한국인 기술자와「아나운서」의 집을 소리 없이 급습, 약 40명을 연행해간
-
장준하 저 『돌 베개』
장준하씨의 저서 『돌 베개』는 일제 말 단 2년간의 그의 체험 수기지만 우리 현대사의 한 증언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책은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 그의 일군에서의
-
신민당의 새 관리인 김홍일씨
신민당의 당수권한대행으로 선거를 치르게 된 김홍일씨는 광복운동에 몸을 던졌던 장군으로 67년에 신민당과 인연을 맺었고 파벌이 없다. 평북 용천 출신인 그는 일제 때 중국에 망명,
-
정의당 대통령 후보 진복기씨 등록
정의당은 27일 하오 진복기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중앙선관위에 등록 신청했다. ▲전북 전주 출신 53세 ▲만주 북경 대 졸업 ▲광복군중앙조직위원 ▲대동청년단 중앙본부조직위원 ▲정의당
-
(92)창군전후(11)이경석(필자는 제자)
경비대의 초창기에는 갖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 중에도 사병들이 장교를 구타하거나 배척한 이른바 하극상사건이 많았으며 한국장교와 미군간의 충돌도 적지 않았다. 제3연대장 김백일
-
(91)창군전후(10)|이경석(제자는 필자)
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계급칭호와 계급장·휘장 등의 제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 계급 칭호는 적잖은 산고를 겪었다. 일본군 출신의 일부에서는 그들의 몸에 밴 소위 중좌 대
-
(90)창군전후(9)|이경석(제자는 필자)
군정청은 46년1월14일 국내치안 유지를 위해 당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설치하고 다음날 태릉 현 육사자리에서 제1연대1대대A중대를 발족시켰다. 미 주둔군사령관 「하지」중장은 남한에
-
(87)창군전 후(6)|이경석(제자는 필자)
미 군정청은 한국군을 창설하기에 앞서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군정청의 국방 당국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통역관을 찾았으나 쉽게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
(85)창군전후(4)|이경석(제자는 필자)
일군·만군·광복군 출신들은 일본·만주·중국·동남아·남태평양 등지에서 귀국하자마자 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필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아가는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만났을 것이
-
(84)창군전후(3)|이경석(제자는 필자)
나는 스마트라 섬에서 해방을 맞았다. 제25군이 주둔한 이 섬에서 철도부대에 소속해 있었다. 우리가 패전을 알리는 일본천황의 방송을 들은 것은 8월16일이었다. 제25군에서는 전도
-
(34) 제6화-창군전후(1)이경석.
구한말 군대 해산령이 내린 것은 1907년7월. 이때 한국무관학교에는 지청천·이응준·김석원 등 40여명이 재학하고있었다. 군대 해산령에 따라 무관학교의 문도 닫혀져 재학생 40여
-
「잊혀진 역사」에의 비전 독립운동사 편찬
한국사를 민족의 주체 사로 정립하려는 학계의 움직임에 따라 최근세사에 있어서 가장 흐려지고 왜곡된 부분인 1895년 을미 년에서 해방이 되던 l945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하는 움직임
-
한미관계 25년-부문별로 본 그 문제점·전망
한미관계는 19세기 말부터 우리와 밀접한 것이지만 해방과 더불어 지난 25년간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었다. 한국국제관계연구소는 12월3일∼5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한미관계 25
-
사상 최대 글씨 내 놓은 정필선씨 서예전
서예가 해봉 정필선씨의 서전이 17일∼23일까지 신문회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가정주부들의 서체를 지도하면서 해봉연서회를 열고있는 정씨는 자유 분망한 서체를 구사하여 정력적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