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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25년-부문별로 본 그 문제점·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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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미관계는 19세기 말부터 우리와 밀접한 것이지만 해방과 더불어 지난 25년간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었다. 한국국제관계연구소는 12월3일∼5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한미관계 25년-그 문제점과 전망」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갖는다.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한미관계의 외교·군사·경제·문화적 측면 등 5개 회의의 주제 가운데 마지막 한미관계 부분만을 요약, 소개한다.

<경제-김종빈(연세대교수)>60년 초까지 군원에 중점|60년대 후반부턴 무역
한미간의 본격적 경제관계는 8·l5이후로 볼 수 있다. 60년 초까지는 대체로 미국측의 일방적 원조였고 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원조와 함께 무역과 자본이동이 차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8·15 이후 6·25동란까지는 전후처리의 긴급원조였고 6·25 이후 60년 초까지는 재해복구와 군비강화로 변천했다. 이 기간 외 미국원초가 군사원조에 중점을 두고 경제원조는 측흥적 경향을 띠었다는 것, 경제원조가 조건부였고 일반사업계획보다 특정사업을 위한 것이었던 점은 한국의 장기경제개발구상을 어렵게했다. 이는 당시 한국의 국내외정세를 감안할 때 불가피한 일이었다.
60년 초부터 현재까지의 한미경제관계에는 대미수출과 미국자금유입이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했다. 한미경제관계도 한국의 대외경제관계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하게되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수출·입의 증가, 선진각국에서의 막대한 외자도입, 각종 국제기구에의 적극 참여, 일본과의 수교에 따르는 증여 등 비미자유세계 각국과의 경제관계가 대미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대미관계는 대외 경제관계에서 아직도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경기정책·무역정책·자원보존책은 한미경제관계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 과잉보호정책이 한국의 직물 대미수출을 억제하고 어족보호정책은 한국어업에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어떤 나라의 대외정책이 대내정책과 완전 분리될 수는 없지만 최근의 미국은 과도히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자유국제무역구조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미관계를 구축해야한다.

<군사-이기원(국방대학원교수)>한국군은 미 전략 따라 육성돼|전술면선 미군영향이 절대적
한국자체가 지닌 여건과 미국의 대공전략상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전략적 여건이 군사면에서 중요하다.
한국전쟁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입각한 미국의 대한공약 그리고 대한군사원조가 주축을 이루는 문제지만 군사사상·군사조직·군사력의 성격이란 세 요소가 군의 초점이 된다.
군사사상면에서 전략논은 미국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이 가장 적은 부분이다.
건군 이래 군고급지휘관은 일군·만군·광복군 출신이 태반이었고 비록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해도 전략문제를 다룰 군사대학·국방대학·산업대학에서가 아니고 해군대학·공군대학·지휘참모대학에서 전술적 의미에서의 군사공리만 배운 것이다.
전술면에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에서 영향받았는데 군사교범 등이 그것이다.
미국은 핵무기 발달에 따라 억제전략을 폈는데 그 때문에 여지국가는 미국의 전략개념에 입각한 전술적 차원에 머물러 주길 바란 것이다.
군사조직면서도 그들의 영향으로 거의 비슷하지만 행정업무처리절차는 경제성과 능율성이 고려된 합리적인 것이다.
군사력의 성격에 있어서도 비록 국가방위력으로서 육성되고 있지만 독자적인 전략개념에서 육성되기보다 미국의 대공전략의 일환으로 육성됐다.
오늘날 미국이 2개반 전쟁전략에서 1개반 전쟁전략으로 그 방향을 바꾸려는 듯이 보이는 때 자주국방이 중요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문화-고영복(서울대문리대교수)>미국문화의 능율성·논리성유입…의식구조의 분열초래도
한미간의 문화관계는 8·15 이후 특히 6·25 이후 긴밀해졌다. 두 문화는 체계적으로 이질적임에도 친근성을 갖게되었다.
미국문화는 선교사업, 군정기의 민주정치제로의 개편과정, 6·25전후의 지원체제강화 대량의 유학생, 거액의 학술조사사업권장 등으로 접촉의 폭을 넓혔으며 확산작용의 길을 텄다.
해방후 미국문화의 이식과정의 특색은 상층 속에 l차적 정착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문화는 용구지향적 문화 속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목표지향적 문화에는 간접적 자극제의 역할만 했으며 규범지향적 문화에는 초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논의되는 한국문화는 강압적 용구지향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 목표지향적 문화와 규범지향적 문화의 상호제휴 및 결속의 요청현장이다.
어쨌든 미국문화는 한국문화에 능률성의 논리를 도입했고 업적성·보편성·개인지향성·실용성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또 이는 한국문화의 상부상조의 미풍을 민주성으로 승화시키지 않은 채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는 사회의식의 이중구조 내지 분열현상을 유발했다. 앞으로 양국은 문화간의 우월관계나 지배관계를 따지지 않는 확고한 문화적 상대주의의 기본방침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외교-김광원(경희대교수)>미의 대한정책엔 소극성도|38선 설정은 한국에 큰 손실
「한스·모겐도」가 지적하듯이 『미국인의 철학 속에는 대외정책이 없다.』 미국은 최대강국으로서 알맞는 범세계적 「비전」도 없으며 때문에 「조지·케넌」같이 극동참여를 비난하는 측도 있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실리추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디어도·루스벨트」가 미국의 「필리핀」 진출대신 일제의 한국침략을 묵과한 것이나 해방후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실리추구의 표본이다.
실리추구가 비판의 대상일 수 없지만 미국에는 문제가 있다. 미국은 부강국에 맞지 않게 대외정책 「스타일」은 소극주의 적이었고 근시안적이었다. 시종 일관성이 없고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정책이다. 38선의 설정, 한국전쟁이 모두 여기에 기인됐다.
미국은 자기의 힘 때문에 전 세계에 대한 포괄적 역할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데도 늘 고립주의·비대결주의, 중립주의에 빠져 있었다. 「케네디」이래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대한관은 극동의 역균형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볼 뿐이다.
최근의 「사이밍턴」 청문록에서 보더라도 미국관리들의 근시안적인 실리추구의 사고행태를 살필 수 있다.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가운데 중요한 것은 대공방위책임이다. 한국인이 가장 불안스럽게 느끼는 것은 북괴의 위협 자체보다도 미국의 방위공약의 신빙도에 있다. 소련과 중공이 북괴를 변함 없이 지키는데 비해 미국의 정책변동은 가변적 상황에 있는 것이다.
한국문제는 미국의 극동문제의 부수적 조항이 아니고 하나의 독립된 중대국제정치의 대상임을 인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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