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당분자 색출·공작원 양성 등 담당|남북적 회담 등 수행원의 80% 차지
북괴의 이른바 국가정치보위부는 73년5월 사회안전부의 정치보위국을 분리 독립시켜 신설한 주석 김일성 직속기관으로 북한내의 간첩검거, 반당·반국가음모행위자 색출검거, 공작원양성 및
-
열전 닷새째-중동의 표정
개전 닷새째가 되자 「이스라엘」측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남부 전선 사령관 「슈무엘·고넨」 중장은 「수에즈」운하 전투가 『지금까지의 어떤 전투보다도 힘들다
-
(826)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4)
정치위원회에서의 무력통일정책이 결정됨으로써 북한측은 ①당 기관·정권 기관·민청·직업동맹(노동조합)·농민연맹들로부터 대량으로 인원을 선발하여 군대를 증강한다 ②남한출신의 당원, 「
-
(624) 조선어학회 사건|정인승
홍원경찰서에 끌려온 지도 석달이 넘고있었다. 밖에는 흰눈이 내리 쌓이고 찬바람이 스며들어 유치장 벽에 몸이 닿으면 아리도록 추웠다. 석달간을 취조했으나 이렇다할 범죄사실을 밝혀내지
-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법 전문
제1조(목적) 이 법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국민주권을 행사할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이하 「대의원」이라 한다)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공정히 선거함으로써 민주
-
적국 속의 취재전선|진실확인 힘겨운 기자들의 고충
【하노이=앤더니·루이스 기】전시 적국의 수도에서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기자는 지극히 드물다. 지난 5월, 2년 동안의 노력 끝에「하노이」로 들어간「뉴요크·타임스」지 「런던」
-
(343)|가요계 회면 사(23)|고복수
처음 일본공연은 태극기사건으로 실패했으나 조선악극단은 그 뒤 연달아 일본에서 공연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탄압이 심해 가는 곳마다 슬픔을 겪었다. 41년12월8일 제
-
(342)|가요계 이면사(22)고복수
레코드가 히트하고 가수들의 수입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가요계는 태평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 잃은 슬픔은 가요계의 구석구석에 스며 있었다. 노래는 두메산골이나 한적한 어촌이나를 가리
-
교도소 밖서 복역|미군서 시험계획
【포트딕스(뉴저지주) AK뉴스】미군 당국자들은 「뉴저지」주 「포트딕스」에 있는 한 군 교도소에서 실시되고 있는 시험계획을 다른 영창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
-
(179)방송 50년(8)|이덕근(제자는 필자)
일본 사람들이 경성 방송국을 세운 목적은 한국 민족의 이른바 황국 신민화를 위한 식민 계획의 하나에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따라서 방송이 생긴 1927년부터 방송내
-
(175)방송 50년(4)|이덕근(제자는 필자)
27년에 생긴 경성 방송국은 l933년까지 5년 동안 일본어 단일 방송을 하다가 33년4월26일에 소위 이중 방송의 실시로 한국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이 각각 독립했다. 단일 방송
-
(131)|우정 80년 (11)|강직순
소중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체통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통신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식 우정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만 해도 대부분의
-
무성영화시대(5)>
『아리랑』한편으로 일약「스타」가 된 나는 이어 이경손감독의『봉황의 면류관』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는 신인 정기석씨와 공연했다. 그 당시 정기석씨는 부호의 아들로「스타」를 꿈꾸는
-
(40)6·25 20주…3천여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남」과「북」의 형세(3)
북괴가 1948년 2월에 이미 완전 전투태세와 장비를 갖춘 3개 정규사단의 군대를 창설, 이를 내외에 정식으로 선포했다는 것은 본 연재 전회에서 기록한 대로이다. 그들의 이런 창
-
붓꺾인 알제이 연금 7일(3)|개회식불참 북괴공작때문|기자는 회의장입구서 입장 저지|10명대표중 4명만 참석케
【파리=장덕상 특파원 전보】 10일밤 최 장관등 우리대표들과 「뮤스랑」「알제리」외무성의전장과의 사이에 있었던 1시간25분동안에 회의는 이것이 하나의 신경전이요 지연작전이라고 우리대
-
(상) 확전으로만 대닫는 월남전…「하노이」는 과연 얼마나 전쟁을 지탱해 갈 수 있을지… 사진으로 보는 그 「남」과 「북」 - 미 리·로우크드 기자
「괌」도 전략회의를 계기로 미국의 결의가 명백하게 드러났고 최근 월맹의 강경 태도로 보아 월남전은 확전의 길로만 치달을 것 같다. 과연 월맹은 앞으로 얼마동안 월남전을 끌고 나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