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상임위에서의 대일 발언
국회는 26일 외무·내무·법사위를 열어 대통령 저격사건과 관련된 한·일 관계·수사상황·인책문제 등에 관해 정부측 보고를 듣고 질문을 벌이고 있다. 김 외무는 이날 외무위에서의 답변
-
긴장과 감시의 서일본해안 한국인 밀항지대
「오오무라」(대촌) 비행장은 「규우슈」(구주) 지방유수의 대도시 「나가사끼」(장기) 행비행기가 착륙하는 「로컬·에어포트」. 활주로끝부분에서 5∼6백m쯤 떨어진곳에 회색「콘크리트」벽
-
사할린한인 송환소 동경지방재서 각하
【동경21일 동양】제2차세계대전중「사할린」에 강제노무자로 연행된 한국인과그가족에대해 실태조사를하고 귀환희망자를 일본의책임으로 송환시키라고 일본정부를상대로 제기한소송에대해 동경지방재
-
영의 열차 갱 비그스, 대학서「실기」강의
영국의 대 열차「갱」단 두목으로 수감 중 탈옥에 성공, 「브라질」에 살고 있는 「로널드·비그스」는 끊임없이 그를 추적하는 영국 경찰당국의 눈을 피해 최근 거주지를 몰래 옮겼으며 한
-
사할린교포의 송환문제
전후30년- 망향에 지친「사할린」억류교포의 송환문제가 다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는「사할린」억류교포 가운데서 송환을 희망하는 사람의 인수절차에 있어 일본정부의 야릇한
-
"전원 한국에 귀환 후 희망자는 일에 이주"
【동경=박동순 특파원】「사할린」교포송환교섭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송환자 인수방법을 에워싼 한-일간의 의견차이는 최근 한국 측의 타협안을 일본에 제시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나
-
원폭피해 한국인에 치료수첩발급 판결
【동경30일합동】 일본 「후꾸오까」지방법원은 30일 원폭피해를 본 한국인 손진두씨(48)에 대해 일본인과 똑같이 치료를 받을수 있도록 「후꾸오까」시장은 손씨에게 피폭자수첩을 발급하
-
납북어부 생사 등 요구
대한적십자사는 25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열린 두 번째 남북적십자 대표회의에서 서해 상에서 격침·피납 된 수원 32, 33호의 어부들을 간첩으로 모는 북한
-
"일본 물가 비싸 귀국하고 싶다"
【동경10일 합동】『물가가 비싸고 물자가 부족하여 일본에서는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모국인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한국인이 일본경찰에 자수했다. 부산출신으로 지난 72년 12월,
-
김광자씨 두아들 구출 탄원차 도일|여성 단체 세 대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재일 교포 김광자씨의 아들 구출 한국 여성 위원 회장 이숙종 여사(70·국회의원) 등 3명의 여성 단체 대표가 일본에서 김씨의 두 아들 송환을 촉구하기 위해
-
복지연금법안 국회 통과|투자 기금법·형소법안 등 11개 법안도
국회는 1일 본회의에서 국민복지연금법안·형소법 개정안 등 12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심의에서 국민복지연금법안·국민투자기금법안 및 여야 협상을 통해 손질된 조세 감면 규제 법안에 대
-
재일 교포 청년 강제 퇴거조치
【동경=박동순 특파원】동경지방 재판소 민사3부는 22일 재일 교포 신경환씨(25)가 제기한 강제퇴거집행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이유 있다고 집행정지결정을 내렸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
-
소년때 강도로 8년 복역|재일 교포 청년 강제 송환
【동경=박동순 특파원】일본서 나서 자라 협정 영주권을 갖고있는 한국인 청년 심경환씨 (25·「오오무라」수용소)가 소년시절에 범한 강도사건으로 징역8년형을 받고 복역중 형무소에서 가
-
"어떤 시련 있더라도 뺏긴 두아들 찾겠다"
이혼한 남편과 조총련의 꾐에 빠져 두 아들을 북송선에 뺏긴 재일 교포 김광자씨(44)가 아들의 송환을 각계에 호소하기 위해 26일 하오 KAL기 편으로 고국에 왔다. 김포공항의 「
-
교포형제 강제북송
【동경=박동순특파원】13세와 15세의 재일교포소년이 북송선에 실려 강제 송환된 사실이 22일 밝혀졌다. 지난 19일 「니이가다」(신석)항을 출항한 북송선 「만경호」편으로 북한으로
-
사할린 교포의 송환
3일 동안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일·소 수뇌 회담의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성명에서 한국 민의 특별한 관심을 모은 대목은 일·소가 남북 대화를 환영한 사실이라 하겠
-
휴전 20년|판문점 정전위 일지에 얼룩진 그 사건과 설전
휴전 20년-. 1953년 7월 27일 상오 10시 휴전 협정이 조인돼 판문점에는 군사 정전 위원회가 들어선 지 20년이 됐다. 그 동안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 위원회 회담은 3백4
-
(480)|인도군의 포로 관리 (5)|설득 설전 (1)
중립지대 안의 반공 포로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인도군 포로 관리의 초점이었던 이른바 「설득 설전」에서도 개가를 올렸다. 우선 반공 청년단 조직과 수용소 단위로 편성된
-
(478) 중립지대안의 수용소(3)|인도군의 포로관리(3)
공산측은 10월초의 총격사건을 계기로 인도군에 대한 한국정부와 반공포로들의 감정이 가일층 악화되자 이를 교활하게 이용, 무력 충돌까지를 획책했다. 우선 그들은 인도군에 대한 태도를
-
(477)|중립지대 안의 수용소(2)|인도군의 포로관리(2)
53년10월1일과 2일.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방에 설치된 반공포로수용소에서 수명의 사망자와 10여명의 부상자를 낸 인도군의 「총격사건」은 또 한번 한국정부와 국민을 격노케 했다
-
(473)|휴전회담(후반부)(25)|협정조약(1)
2만7천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되자 공산측은 노기가 등등하여 6월20일의 비밀회의에서 탈출포로를 모두 다시 잡아 가두라고 호통을 치고는 일방적으로 휴전회담의 휴회를 선포하였다. 6·1
-
2차 대전때「사이판」에 두고 온 토지 등 15억 재산 찾기에 나서
2차 대전 말엽까지 남태평양의「사이판」섬에 살았던 이두전씨(70·제주건룡담동701)가 옛 기억을 되살려 귀국할 때 재산관리를 맡겼던「사이판」원주민「호세·방해리낭」씨(58)를 편지로
-
(465)휴전회담(후반부)(17)
(9) 1951년8월7일에 공포와 전율에 떨던 거제도포로수용소의 반공포로들은 이미 노출된 적색포로들의 용광로 조직에 대항하는 「대한반공청년단」을 조직, 송환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
-
(464)휴전회담(후반부)(16)
이승만 대통령이 6·18 반공포로 석방 영단을 내리는데 있어서는 혈서탄원, 송환반대「데모」, 밀사파견 등 반공포로 자신들의 열렬한 투쟁이 크게 작용했다. 석방의 첫 동기는 이같은